처음으로 아프리카대륙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 제60차 총회가 사흘간의 회의를 마치고 어제 폐막됐다. 금년의 주제는 ‘신문의 미래 만들기(Shaping the Future of The Newspaper)’다. 역시 신문의 위기, 아니, 기회이기도 한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이다. 벌써 몇 년째 어휘만 다를 뿐 비슷한 주제다.
결론도 비슷하다. 창조적인 양질의 콘텐츠를 유지하는 한편, 뉴스를 전달하는 새로운 채널을 계속 확장해 가면 신문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변하지 않으면서 변해야 한다.
109개국 1,600명 신문인들이 해결책 모색을 위해 고민과 경험을 공유한 이번 총회에서 가장 강조된 두 단어는 활력과 혁신이다.
매일 ‘신문의 사양길’만 귀 아프게 들어온 참석자들에겐 5월에 실시한 해리스 여론조사 결과가 오랜만에 활기를 선사했다. 7개국 8,749명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앞으로 5년동안 온라인 뉴스 급상승의 가장 큰 피해자로 TV네트웍 뉴스를 꼽았다. 신문뉴스의 하락폭은 극히 미미했다.
독자들은 구독률 하락보다는 저널리즘 본질에 대해 우려했다. 신문의 신뢰도는 1~100 스케일에서 50정도에 머물렀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커뮤니티 감시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신문의 공정성에 대해선 선뜻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독자들의 관심사를 알아내려는 노력도 부족하고 심층분석과 오피니언 개진에 대한 비중도 줄어든다고 질책했다. 또하나 지적은 문장력 개선이다. 기자들이 글을 좀더 잘 써야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미국과 독일, 스페인과 호주 독자들 모두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신문에 대한 기대도 현실적이다.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고 바르게 이해하는데 신문이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는 정도다. 허위는 말할 것도 없고 왜곡이나 과장보도에 대한 독자들의 염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아직 독자들의 신문에 대한 애정은 다른 미디어보다 훨씬 강하다. 신문의 자체 노력에 따라 영향력 강한 뉴스공급원으로 계속 건재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얹어주었다.
물론 거저가 아니다. 변해야 한다. 신속하고 새로운 뉴스전달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 신문은 살아남기 힘들다. 소극적 변화가 아니다. ‘혁신’이라야 한다. ‘미 저널리즘 리뷰’의 커버스토리 ‘적응하라, 아니면 죽으리라’는 과장이 아니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뉴스산업은 영원히 변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모든 뉴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신문의 ‘절대적 영향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모두에게 의견을 말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뉴스가 되고 있다.
아직 전세계에선 매일 5억부의 신문이 발행되고 14억명이 신문을 읽는다지만 미국의 구독률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2005년의 신문기업의 수익률은 포춘 500대기업 평균의 2배나 되는 21%를 기록했지만 전년대비 25% 하락이다. 앞으로 더 큰 하락을 예고한다.
편집국을 중심으로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생존전략의 하나는 인정받은 신문 브랜드의 가치를 온·오프라인 양쪽에 다 적용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수천명의 기자가 감원당했지만 종이신문에 더해 온라인뉴스까지 커버해야한다. 업무가 2배, 3배로 늘어난다. 최소의 인력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창출하는 효율적 경영이 요구된다. 모바일 저널리스트도 탄생했다. 사무실 책상과는 결별하고 랩탑과 셀폰으로 무장한채 온종일 차를 타고 움직이며 수시로 온라인에 기사를 올리는 움직이는 기자들, 모조(MoJo)들이다.
‘모조’의 보도는 신속하지만 피상적이다. 심층보도나 분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가볍고 재미있고 선정적인 기사의 분량이 늘어난다. 사회 감시자 역할의 비중은 자꾸 줄여가게 된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신문제작에서도 매직은 없다. 인력과 품질은 정비례다. 수익과 인력과 품질의 상관관계는 조금 더 복잡할 것이다. 품질의 저하는 장기적 수익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인력 삭감은 단기적 수익향상의 지름길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엘슨은 뉴스위크의 최근 칼럼을 이렇게 시작했다. “내가 1969년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로 입사했을땐 아무도 뉴스산업을 비즈니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명이었다…우리는 신문도 돈을 벌어야한다는 현실을 기꺼이 무시했다…”
미주한국일보가 9일로 창간 38주년을 맞는다. 내가 처음 만났던 6살의 아기 한국일보가 어느새 40대 중년이 되어가는 사이 세상이 달라졌다.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고 독자의 요구도 변했다. 게다가 지금은 뉴스의 전달 경로가 다양해진 디지털시대다. 사고의 전환은 필수적이고 전환 방향에 따라 저널리즘의 질과 효율성의 비중이 오르내릴 것이다.
새뮤엘슨과 비슷한 때에 기자가 되어 비슷한 분위기의 미디어 환경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그 선택에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기본가치가 어떤 수익성, 어떤 효율성 보다 앞선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의 신문이, 달라진 환경에서 부대끼는 다음세대의 저널리스트들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그들이 현명한 균형감각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미주한국일보의 50주년, 100주년을 자랑스럽게 축하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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