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관전
김동열 본보 객원기자
다음달에 발표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해외위원 선정을 앞두고 본국 유력지가 머리 기사와 사설을 통해 위원 선정을 둘러싼 동포사회 분열을 보도 하면서 서울 시민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에서 워싱턴 특파원이 현지 사정을 크게 부각시켜 본질을 흥미위주로 보도 했지만 해외동포들이 분열의 중심에 있는 듯한 불쾌감을 남겼다.
체육관 대통령선거로 불리던 통일주체 국민회의가 폐지 된 다음 해인 1980년에 태생하면서 부터 말썽의 소지를 안고 발족한 평통은 현재 국내외 254개의 지역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약 1만 7천여 명의 자문위원이 있다.
그 중 해외위원이 1천6백여 명이었는데 오는 7월 출범하는 제13기에서는 3백여 명이 추가된 총 2천명으로 늘어 날 전망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인선이며, 현 부의장이 재야 출신이라 진보파 인사를 많이 넣기 위해 정원을 사전에 늘린다는 등 여러 가지 뒷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매 2년마다 봄이 오면 연례적으로 동포사회 내 갈등을 몰고 오는 것이 평통위원 인선 작업이다. 올해도 그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이미 위원 선정 청탁이 본국 실력자들을 통해서 쏟아지고 현지에선 자천 타천으로 총영사관에 압력을 넣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특히 지역협의회 회장이나 새로이 신설될 부 의장직을 둘러싼 투서와 루머에 평통본부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왜 이런 말썽이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정부의 정책이 일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나팔수들이 조직을 제멋대로 움켜지고 입맛대로 휘둘러 왔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정책이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최소한도 인선의 원칙은 정권에 관계없이 지켜졌어야 하는데 정책의 연속성이 없다 보니 위원 선정 시(時) 갈등이 끊어지질 않는다.
평통 초기 인선의 원칙은 최고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는 것으로 확고했다. 이 원칙이 정권과 정책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켜졌다면 오늘과 같은 적체된 위원 선정 불만은 사전에 충분히 예방 할 수도 있었고, 보다 많은 동포들이 긍정적으로 평통위원 직(職)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 인선과정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일부 인선위원들이 자신의 소속 단체나 친근한 사람을 추천해서 자기들만의 친목회 화(化) 했기 때문에 원칙에 어긋난 연임이 반복 되었다. 또한 평통본부 사무처도 2회 이상의 연임자를 철저히 탈락 시키는 감독 기능을 게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연임 로비 대상에 휩쓸려 총영사관에서 올리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임의대로 마구 끼워 넣었던 것이다. 또한 연임 원칙을 지켜지지 않을 때는 그에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본국에서 로비나 평통 사무처 직원과의 오랜 친근 관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는 무책임한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인선 원칙을 지키고 감시해야 할 평통 사무처가 어두운 위치에서 스스로 원칙을 손상 시키고 그 연임 불화를 동포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처럼 오도하여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그럼 평통위원은 어떤 임무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평통위원의 임무는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을 건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헌법기관위원이지만 실제로 참여자들을 보면 크고 작은 단체장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통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미 주류 사회에 나가서 한국정부가 추구하는 평화 통일정책을 설명할 만한 인물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런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적극 추천하면 대부분 고사한다. 결국 선정된 사람들은 봉사할 마음이 있으면서 한인사회에 알려진 사람들이나 명예 또는 대외용 직함을 원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한국 언론은 지금까지 외교안보 부서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면서 평통의 조언이나 의견이 반영된 사례가 없는 것 같다고 인용 보도했다. 이런 말이 정책 수립자 또는 관계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며 재외동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쓰고 수 많은 인원이 연관된 조직이 뚜렸한 목적과 성과도 없이 형식적인 사업을 벌였다면 평통 무용론 주장자들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동안 평통의 활동이 전시용 사업 중심이었다고 해도 재외 동포사회는 크게 불만스럽게 생각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동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 왔기 때문이다. 평통이 그런 거수기 같은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미주지역 동포사회에서 만큼은 그 원칙이잘 지켜져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지역협의회에서 아무리 회의를 하고 건의를 해도 정책 수립에 반영이 안 된다는데 한 사람이 세번, 네번씩 또는 그 이상 위원 직에 연임될 정당성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평통 일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본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역시 평통위원은 단순한 명예직으로 통(通)하고 있다. 대도시가 아닌 곳일수록 위원 선정 잡음이 많다. 시골에선 평통위원=유지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평통이 무용론과 해체론 등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유지돼온 가장 큰 결정적인 이유는 정권의 관변단체로 최소한 한국 정부를 방어하고 홍보하는 임무라도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자리로 알려진 만큼 미래 평통은 그 직책에 대한 능력보다 동포사회 화합의 차원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문호가 대폭 개방 되어야 한다. 특별한 자격도 전문성도 요구되지 않는 명예직을 소수의 사람이 6년 이상 독점한다는 것은 동포사회의 화합을 해치는 몰염치한 행위이다. 한국정부가 동포사회가 단결되고, 생산적인 화합의 장으로 거듭 나기를 원한다면 평통위원 최고 2회 이상 연임금지를 이번부터 라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면 수년 내 공급과 수요의 밸런스를 잡을 수 있어 눈살을 찌프리는 꼴불견 청탁 로비는 수그러들 것이다.
일부 시민들은 이번 언론 보도를 보고 본국도 아닌 해외 평통 자문위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혹 한국이 위기에 처해도 해외 동포들이 오겠냐는 때아닌 시비도 한다. 서울 시민의 관심은 좋으나 그 이상은 동포사회의 독립성을 크게 해칠 것이다. 제 13기 위원 선정을 앞두고 본국 정부가 상식적인 인선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동포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골이 떠 깊게 파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해인 올해 진보세력이 평통을 접수하기 위해 무모하게 진보파로 물갈이를 결행한다면 동포사회의 극심한 반발과 함께 이념문제로 또다시 편가르기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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