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
해마다 6월이 오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1950년 6월의 어느 평화로운 주일 아침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전쟁은 내 형제, 부모를 전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서로의 가슴에 증오의 총구를 겨누고, 미움의 비수를 꽂아야만 했으며, 급기야 분단이라는 깊은 상처 속에 가족간 생이별의 고통을 안아야 했습니다. 수많은 고아와 미망인의 눈물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베개를 적셨습니다. 전쟁 폐허 속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흑백 사진 속 아픔으로 우리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만의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밥 피얼스 목사를 아십니까?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마지막 민간항공기를 한국에 들여와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월드비전을 창설하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 기관으로 성장시킨 위대한 선교사요, 당시 한국 40만 전쟁 고아의 아버지였던 인물입니다. 직접 찍은 영상을 들고 미국 교회를 순회하며, 한국의 참상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조직해 세계를 순회하며 한국을 알렸습니다.
미국 오리건 집회에서는 지금의 홀트 아동 복지회의 창설자, 홀트를 만나 입양 기관의 비전을 심어 주었습니다. 초기 한국 고아들의 미국 입양을 주선했던 세계 선교역사 속에 구제 선교의 초석을 다진 선각자였습니다.
한달 전 만난 매릴리 피얼스는 그 분의 둘째 딸입니다. 현재 월드비전 대변인으로 전 미주와 세계를 순회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매릴리는 처음으로 자신과 가족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국과 월드비전, 저는 세 쌍둥이입니다. 1950년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애써 한국과 월드비전을 외면했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내게서 뺏어간, 내게는 질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랐던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항상 내 곁에 없었고, 어쩌다 돌아온 아버지는 또 다시 미 전역 순회집회를 위해 짐을 싸는 모습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의 손에는 선물 대신 거리에서 구걸하는 생면부지의 소년, 소녀들의 사진과 영상만이 들려 있었습니다. 혼자서 자녀를 보살펴야만 했던 어머니의 남모르는 눈물과 사춘기 시절을 외로움 속에서 보내는 언니의 아픔을 보며 성장한 나에게 아버지의 열정과 비전은 그저 가족을 희생시키는 한 선교사의 이기심일 뿐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카네기 홀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을 때, 한국에서 온 고아 합창단이 연주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환호와 동정을 아끼지 않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세계를 순회하는 그들에게 부러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50년이 흘러 1999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비전 50주년 행사’에 창설자의 가족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참석할 때까지 그 질투와 원망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모인 월드비전의 용사들의 열정과 기도가 나의 아버지가 평생 침대에 꿇어앉아 외치던 기도임을 보면서, 50여년 전 나와 우리 가족의 희생이 지금 월드비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사역에 비해 너무나 작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과 예수님의 가슴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월드비전에 헌신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버지가 걷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간증이자, 전혀 뜻밖의 고백이었습니다. 선각자의 가족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저는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리고 부끄러워서.
“한국은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요. 저는 한국민 앞에 서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 세계는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오래 전 한국이 겪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또 다른 한국의 기적을 한국민의 손으로 직접 일구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6월의 아픔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희망을 위해 뿌려진 씨앗이었습니다. 우리의 아픔이 또 다른 희망의 씨앗으로 승화되기를 요청 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저희 월드비전은 매릴리 피얼스와 함께 미 전역 순회 집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러분의 주변에서 소식을 듣게 된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참석하십시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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