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식 본색이 다시 드러난 걸까. 기자실 통폐합 방침 말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다를 게 없다. 언론을 길들이려던 닉슨의 비참한 정치적 말로를 보아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이다. 하나 같이 이런 폭거가 없다는 지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초강경 자세로, 기사 송고실까지 폐쇄할 수 있다는 으름장이다. 9개월도 안 남았다. 그런 정권이 막무가내 식으로 언론 전쟁을 벌인 것이다. 도대체 제 정신인지, 아니면 다른 노림수라도 있는 것인지 그 해석이 구구하다.
무엇이 대세인가. 변화인가, 전쟁인가. 대권 향방을 판가름할 핵심의 이슈가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 얘기다. 공화당 집권 8년이다. 부시의 인기는 말이 아니다. 이 측면에서 보면 대세는 변화다. 지겹기만 한 보수 공화당 정권이다. 그러니 갈아야 한다는.
미국 정치의 정석이다. 그러나 전시에는 정석의 수순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역시 미국적 상식으로, 전쟁이라는 측면이 더 부각될 때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전쟁수행 능력이 대세의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판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론을, 다시 말해 세상인심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건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내로라하는 정치 분석가도 섣부른 전망을 회피한다. 그만큼 여론 앞에 겸손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 정치의 본령이기도 하다.
미국 얘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느닷없는 언론전쟁을 펼친 노심(盧心)을 헤아릴 수 있는 단초가 엿보이는 듯해서다.
저마다 평양을 방문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리고는 일제히 동교동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다. 하교라도 받는 모습이다.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 여권 주자들의 정해진 행보다. 괴이하다고 할 정도다.
‘김정일 블레싱’에, ‘DJ의 눈도장’은 대권가도에 필수품이라는 분위기다. 평양 체제에 미래가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권 재창출을 가능케 하는 파워의 소재는 다른 곳이 아닌 DJ의 수중에 있다는 인식 같다.
‘진보의 희화화(戱畵化)다’-. 좌파 정치 지도자들의 이 기이한 움직임과 관련해 한 논객이 던진 말이다. 한 마디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는 거다.
북한 정권의 반(反)인류 범죄성 행태가 반복되면서 대학생들마저 북한 체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한 무조건적인 북한 편들기다. 그리고는 ‘김정일 블레싱’에 급급해 있다는 점에서다.
시대정신을 잘못 알고 있다. 또 다른 지적이다. 이른바 ‘1987년 체제’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의 관점에서 여전히 세상을 재단하려고 든다. 시대착오도 이만저만한 시대착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느닷없는 언론 전쟁인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방지하려는 노력이다. 집권 좌파세력이 자기 파탄을 인정하지 않고 언론을 희생양을 삼으려는 데서 일어난 일이다. 국내 언론의 분석이다.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가 더 첨가되어야 할 것 같다. 여론에 결코 승복하지 않겠다는 반(反)민주적 심성이다. 여론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그까짓 여론쯤이야…’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시대정신의 총아로 본다. 일시적으로 여론이 나쁠 수는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역사는 여전히 내 편이다. 이런 확신에 흔들림이 없다. 때문에 ‘그까짓 여론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소신성 착각이라 하던가.
“둘이서만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 민주평화 세력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국민은 초조해 있다…” 모두 합쳐 30%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발언이다. 그 발언 곳곳에 교만이 묻어 있다고 할까.
왜 느닷없는 언론 전쟁인가.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연말 대선에 ‘올인’하겠다는 거다. 그 방법으로 판 흔들기를 하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여론이 안 좋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걸 바꾸어야 한다. 정권 재창출을, 아니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세력이 결집해야 한다. 장고는 끝났다. 그 신호탄이다.
그리고 여러 변수를 선거에 끌어들여야 한다. 지역 정서가 그 하나다. 남북정상회담 등 북한 변수가 그 둘이다. 그리고 기득권층과 비 기득권층으로 또 다시 편 가르기를 하는 거다. 역전을 노리는 판 흔들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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