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형란 (수필가)
“눈은 장식이니? 이거 안 보여?“
이 집으로 이사와서 낡은 유리창을 이중창으로 갈면서 나무로 유리창틀을 짜서 만드는 공사도 같이 했을때, 유리업자가 아이들방 창틀 위와 아래쪽을 거꾸로 달아놓고 간 것을 보고 집에 온 남편이 나에게 했던 타박이었다. 믿었던 유리업자가 창틀을 거꾸로 달았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의 실수가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기술적인 실수도 용납 못하는 엔지니어 남편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 것인가….
쌩떽쥐베리의 단편인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알려줬던 인생의 진실 중 하나,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거라고 내가 아무리 부르짖어 봤자 눈에 뻔히 보이는 것도 보지를 못한 경우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이런 나와 일상을 같이 하는 남자의 복장은 얼마나 터질 것인가 생각할 때마다, 하느님이 워낙에 많은 인간들을 만들다 보니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도 끼여 만드셨다는 탓도 해 본다.
가끔씩, 인생은 눈에 확연히 보이는 숫자로 시작해서 숫자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살다가 숫자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어떤 점수를 받는지, 그 사람의 연봉은 얼마이고 몇 평짜리 집에서 사는지, 그리고 얼마짜리 생명 보험이나 재산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는지…. 이런 숫자로 대충 저울질하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가늠해 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결혼한 여자를 오리에 비유한 농담을 들었는데 그 부류는 날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집오리, 날기는 나는데 남자처럼 돈을 잘 벌지는 못하는 청둥오리, 남자보다 돈을 더 잘 버는 황금오리, 돈도 많이 벌어놓고 명은 짧아 일찍 떠난 앗싸 가오리, 돈도 안 벌고 집안일도 안하는데 남편 자식 다 잘 되는 탐관오리, 그리고, 집에만 있어 돈도 못벌면서 건강도 안좋아 빌빌대는 어찌하오리였다. 한때는 나도 황금오리로 살리라 착각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지만, 내 인생이라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날지도 못하고 비실거리는 어찌하오리였다.
얼마의 소득을 벌어들이느냐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정해지는 자본주의 충실한 원리 아래, 별 소득없는 나의 생명보험금은 세금 떼고나면 장례식 비용이나 간신히 건질 2만불이라는 것을 알고 이 날 이 때까지 내가 얼마나 용을 쓰며 살았는데 내 몸값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목에 힘줄을 세웠지만, 자신은 건강이 나빠 보험 회사에서 받아주지도 않아서 생명보험 들려고 보약 먹어가며 몸 만들고 있다는 친한 왕언니를 보며 나는 위안을 삼아야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믿음 하에 열심히 살면 된다고 하다가도, 그래도 보란듯이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 남겨놓고 떠나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나도 황금오리가 되어 세상을 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찌하오리가 어찌 하루 아침에 황금오리로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단순노동 주부생활 십 년 넘는 이력으로 아줌마 치매도 중증이라 언젠가는 오랫만에 차려입고 집을 나가면서 대체 어디 가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결국 황금오리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그나마 큰 사고 안치고 사는 어찌하오리가 아무래도 나의 자리인 것 같다. 하지만, 어찌하오리가 지금 나의 모습이면 또 어떤가…. 비싼 황금오리가 행복한 것도 아닐텐데….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 있으니… 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하루 하루 작은 행복 느끼면서 살면 되는거라고… 인간의 가치가 아무리 물질적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 사랑하며 열심히 살았는지가 진정한 존재 가치라고 믿으며… 이역만리까지 날아와 오늘 일용할 양식 구하러 험한 세상으로 등 떠밀려 나가는 남편에게 나 밥 먹여줘서 고맙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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