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의 비극
졸업을 앞둔 작은 아이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버지니아 공과 대학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뉴스를 접한 부모로서는 자식의 소식이 몹시 기다려졌다.
전화를 할까, 아니면 이 메일을 보낼까 여러 생각을 하던 중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그 학생과 비슷한 나이였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신경이 쓰였다.
사건 내용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범인은 한국인이기에 앞서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꼭 받아야만 했던 불행한 정신병자(sick man)로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캠퍼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이번 사건과 한국인과는 무관하게 생각하니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전해 왔다.
걱정은 줄었지만 아이의 말처럼 한 개인의 일이라는 말에 선뜻 동의 할 수가 없다. 범인의 오리진이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어떻게 교포의 한 사람으로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부에선 이런 자책을 한국적 감수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과 교포들이 자발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난 애도의 뜻을 표한 것은 이번 사건 수습의 올바른 반향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픔을 치유하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부 한국언론은 범인이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기 쉬운 1.5세 였기에 일어난 사건처럼 이야기하는데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1.5세들 중 성공한 한국계 젊은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그렇게 많은 숫자를 보더라도 그런 논리는 너무나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가 영어를 못해서 1.5세나 2세들이 괴로워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해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단도 맞지 않다. 조군의 부모는 보통 한국 이민자들처럼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자녀들 뒷바라지 하여 좋은 대학에 보낸 잘못 밖에 없다.
누가 감히 이런 부모에게 교육 부재 운운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죄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70년대, 80년대 미국에 이민을 와서 고생을 하지 않은 1세 가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부부 함께 일을 집을 꾸려갈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바로 미국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양부모가 맡벌이하지 않고 가계를 꾸려 간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일부 자녀 교육이 희생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한국언론의 말대로 양 부모가 일하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고 그것이 이번 사건의 일부 원인이 되었다는 말에 말문이 막힌다.
한국도 맞벌이 부부가 늘어 나면서 이민 가서 어쩔 수 없이 어려웠던 교포들 가정에 대한 이해도 많아질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 한국 정부의 대응은 매우 적절했다.
노대통령의 애도 메시지며, 정부 대표자의 초기 대응도 좋았다.
주미대사의 어처구니 없는 32일 단식 주장을 제외 한다면.
일부에선 한국 정부의 애도 표시가 다 인종 국가인 미국에 너무나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 책임을 과도하게 떠맡는 거 아니냐는 시비가 일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 대통령의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는 애도 메시지는 무고한 희생자와 부상자 가족이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 국민과 재미 교포들이 보여준 진정한 위로도 양국민의 갈등을 예방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사건 후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부상자를 포함한 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떳떳이 참여함으로써 미 국민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동반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부 미 국민들은 이제 분노와 슬픔은 뒤로 돌리고 모두 한마음으로 미국인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전진할 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 국민들이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선 재미동포 사회가 합심하여 하나된 마음으로 미 국민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도 미 국민들과 유족 및 부상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할 만큼 했으니 뒤로 물러나고 이 후의 모든 치유과정은 교포사회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미국 사회에 익숙한 동포사회 및 종교 기관 지도자들이 나와서 미 국민의 슬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이런 사건의 재발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눈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총기판매 제한 또는 구매 심사 강화 법안 캠페인 등으로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미국 사회에 일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미국 각 지역에서 지역 형편에 알맞은 방법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자연스럽고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교포들간의 따뜻한 위로도 절대 잊지 말자.
이민 역사가 아직도 미천한 재미 동포 사회에 버지니아의 비극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고 어려운 사건이지만 이런 고통을 통하여 동포사회를, 그리고 각 가정을, 자녀들을 다시 정리하는 좋은 기회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접한 많은 해외동포들이 가슴 아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럽의 교포들 가운데는 재미동포들이 이런 일로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격려도 있었지만 그런 말속에는 자승자박이라는 반미 감정이 생각보다 많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 국민들을 위한 애도와 위로가 우선되야할 시점으로 생각된다.
과거 유나보머라는 사람을 기억 하는지…
버클리 대학의 천재 수학교수였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기계 사회를 증오해 사제 우편 폭탄을 만들어 많은 희생자를 낸 엽기사건이었다. 범인 조승희도 유나보머처럼 세상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증오했던 것이다. 그는 계획적 사고임을 증명하는 동영상까지 방송국에 보내는 더 악질적인 면도 보였다.
아울러 학교 총기사고 중 가장 많은 인명 피해 낸 치욕적인 신 기록을 남겼다. 재미 동포사회가 그 동안 미 주류 사회에 쌓은 신뢰가 이번 사건으로 무너졌지만 오늘부터 다시 하나의 벽돌을 옮겨야 하지 않을까?
미국 국민들은 국적과 범죄에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특별히 사건 후휴증이 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확실히 슬픈 날이다.
무고한 희생자들이여! 고통 없는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안식을 얻으소서……
(서울에서,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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