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텍 난사사건 범인의 섬뜩한 면모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단편적으로 털어놓는 그의 행적엔 엄청난 참사를 경고하는 듯한 위험징조가 곳곳에서 보인다. 너무나 뚜렷하게, 그러나 너무나 뒤늦게 이제야 보인다.
어떻게 겨우 23세의 대학생이 그처럼 잔인한 참극을 그처럼 치밀하게 벌일 수 있었을까. 더구나 자녀교육을 지상과제로 삼아온 한인이민가정의 명문대 재학 아들이 왜 그 같은 암흑으로 떨어졌을까. 우리뿐이 아니다. 미국사회 전체가 어떻게? 왜?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갈등한다.
정답을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이미 죽었다. 안개 속을 헤매이면서 한조각 한조각 퍼즐을 맞추어가듯 한걸음씩 원인을 추측해가는 수사당국의 행보를 따라가며 우리의 머리속에선 ‘만약에…’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만약에 교수나 학생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로 경찰이 그를 체포했더라면, 그가 퇴학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더라면, 만약 첫 총격후 그를 잡기위해 학교를 모두 폐쇄했었더라면…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한다 해도 그런 가상의 현실화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망치와 전기톱이 난무하는 그의 습작 희곡은 악몽처럼 섬뜩하다. 그러나 불법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잔혹한 영화들이 ‘예술성’까지 평가받으며 틴에이저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교수가 신변에 위험을 느꼈다해도 구체적 위협행위가 없으면 체포는 물론 퇴학을 시키기도 힘들다. 정신과의사가 ‘통찰력과 판단력은 정상’이라고 진단한 그에게 강제로 카운슬링을 받게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교도 아닌 대학의 캠퍼스를 완전 폐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대학에 한번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미리 막아보려 애썼어도 완벽한 예방책은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예방책이 없다는 것이 속수무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권총을 겨누는 그의 사진들이 거듭 비춰지는 TV화면을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또 한가지 ‘만약에’ 의문을 떠올린다. 그는 5주전 ‘단정한’ 대학생의 모습으로 마을 총포상에서 571달러를 내고 쉽게 권총과 탄약을 구입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총을 살 수 없었더라면…’
교내총격 예방에 대한 그나마 가장 구체적 대책을 줄 수 있는 해답은 총기규제일 것이다. 32명의 무고한 생명이 스러진지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다. 가해자 한명을 제외한 다른 곳에 책임을 추궁하는 건 너무 이르고 아직은 그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할 시간이지 정치색 강한 총기이슈의 찬반을 논할 때는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가, 총기규제 단체와 전국총기협회(NRA)가 제각기 이해득실을 따지는 논쟁을 넘어 미국의 총기문화가 이대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엔 이번 참사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온라인에선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총기소유권 규제에 대한 찬반논쟁이 사건발생 첫날부터 뜨겁게 진행되어왔다.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의견 못지않게 일반인도 무장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버지니아 주의회에서 캠퍼스내 총기휴대를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해 통과되었더라면 최소한 자기방어는 할수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동조를 표한다.
미국의 역사는 총과 함께한 개척의 역사다. 미국독립이 민병대의 총구에서 쟁취되었고 서부개척이 총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여러명의 현직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졌지만 결국 총을 규제하지 못한 사회가 미국이다.
총에 집착해온 미국인들의 정서에 변화를 가져올 뻔한 계기가 몇 번은 있었다.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를 결국 불구로 만든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피격사건이 그랬고 8년전 고교 캠퍼스에서 15명이 사망한 컬럼바인사태 때도 전국이 큰 충격에 빠지며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보이스가 높았었다.
실제로 수십개의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지만 통과에는 대부분 실패했다. 매년 1억달러를 쏟아붓는 총기협회의 막강한 로비에 맞설 정치인들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많지않기 때문이다. 당시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 중엔 한해동안 권총에 맞아 사망한 각국별 통계가 있었다. 뉴질랜드 2명, 일본 15명, 독일 213명, 그리고 미국은 9,390명이었다.
왜?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는 해답을 찾으려 고심하면서 우리는 정신질환을 앓는 범인의 손에 너무 쉽게 쥐어진 총을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할 것이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 되돌아간 평화로운 일상에서 어느 날 다시 ‘최악의 참극’에 부딪쳐 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총기규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것이 미국사회,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일임을 우리는 지금 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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