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범인이 한인 학생 맞습니까?.” 한인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미주 이민 100년사를 넘기며 새로운 한인사 개척의 꿈을 키우던 한인사회가 버지니아텍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한인으로 밝혀지면서 그 엄청난 충격에 비틀거리고 있다. 경찰이 용의자 자신을 포함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 사건의 용의자로 조승희씨를 지목하는 순간, 한인들의 입에서는 “저런!”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본사로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한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 가운데서도 사건의 전모가 하나씩 밝혀지고 범인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안도감 보다는 이번 사건이 한인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한인들의 반응
문제는 용의자가 다녔던 센터빌 고등학교에서 먼저 터졌다. 이 학교 학생들을 취재한 리치몬드 디스패치에 따르면 17일 한인학생들은 이 사건을 놓고 가벼운 말다툼을 시작했으며 감정이 격해진 백인 학생들이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치몬드 디스패치 기자는 “한인 학생들 가운데는 이러한 충돌을 우려하고 아예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고 들었다면서 “한인 학생들이 매우 침울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한인 여학생에 따르면 어떤 교사는 피해자 중에 자신의 제자가 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해 학생들이 감정적으로 통제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인들은 “청소년들이 감정처리 기술이 부족해 일어난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한인사회 전체에 대한 악감정으로 잘못 비화되지 않도록 자녀들을 단속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워싱턴 DC에서 리커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는 50대의 모씨는 “이번 일 때문에 한인 사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느냐”고 먼저 물었다. 아직 사건의 실태가 주류사회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의 반응을 체크할 수는 없었다는 그는 그렇지 않아도 “한흑 갈등으로 늘 조심스러운 사업이 엉뚱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군인 신분으로 워싱턴 지역 인근에 주둔해 있는 군부대에 출근하는 남편을 두고 있다는 한 여성은 “평소보다 훨씬 강화된 검문 때문에 남편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데 고생했다”고 푸념하는 글을 한인 여성들이 정보를 주고 받는 웹사이트 ‘Missy USA’에 올렸다.
제법 빠른 속도로 이 사건의 여파가 나 급속도로 미 전체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실감있게 보여주는 코멘트였다. 또 미국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한 여성은 “백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시 방석에 앉은 기분”이라면서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들이 버지니아 텍 의예과 1학년에 다닌다는 배 모씨는 “2학년을 마치면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겨 돌봐야지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사회적 파장
이번 사건은 미국의 한 구석에서 벌어진 흉악한 총기 살인 사건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한국정부가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해 표명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조문을 보내 위로하고 정부 차원에서 사과성명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돼 동포나 주재원에 대한 보복 살인 사건이 잇따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또 일부는 성사 단계가 가깝던 한미 비자면제 프로그램과 연방하원에서 논의될 예정인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이번 사건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판단도 나오고 있다.
한인인사들 우려 표명
한인 인사들도 한미 관계 악화와 이로 인한 실제적인 피해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 종군위안부 결의안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 주요 이슈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의 서옥자 회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미국 방문을 앞두고 계획했던 주요 행사 일정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것 같다”며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서 회장은 “워낙 큰 일이 터졌으니 한인사회가 이 문제를 먼저 잘 대처하는 일이 급선무”라며 “범대위 임원들과 논의해야겠지만 19일 가질 예정이던 로비데이나 26일 DC에서 벌일 계획이던 대규모 시위도 연기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전종준 이민전문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수민족으로 주류사회 편입을 위해 힘쓰던 한인들에게 경악스럽고 충격적인 참사”라면서 “비자면제 프로그램은 물론 한인학생들의 비자 발급에 피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뉴욕 소재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 역시 인터뷰에서 “9.11 이후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한 그룹을 지목하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중동계가 많이 걱정을 했듯 이번에는 한인들이 걱정을 안할 수 없게 됐다”고 인종 갈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향후 대책마련 시급
한인들은 “과거 LA 4.29 폭동 때처럼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음으로 양으로 한인과 주류사회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대체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인들의 슬픔에 한인사회도 동참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과 일부가 한인사회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철저히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는 것.
한 한인은 “한인들의 이미지만 고려해 우리와 상관없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곤란하다”며 “미국인들의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을 한인 커뮤니티가 느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한 여성은 “태권도와 같이 미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줘왔던 일들이 이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잠시 자제하자”며 며칠간 휴업하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을 알려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인연합회가 즉각 대책회의를 열고, 교회협의회와 다수의 한인교회들이 촛불 추모 집회와 추모 예배를 계획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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