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구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지구온난화’를 꼽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온난화 현상 인정도, 대책 마련도 미적거려온 미국에서 조차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온난화를 우려한다’는 여론도 지난해 9월 66%에서 금년 3월 75%로 늘어났다. 정계와 재계가 이해관계 얽힌 온난화 대책 방향에 촉각을 세운 것은 이미 오래고 ‘속세에 초연한’ 연방대법원까지 드디어 온난화 전선에 첫발을 내딛었다.
2일 연방대법원이 내린 온난화 관련 판결의 요지는 쉽게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온실개스는 공해다’. 어? 그럼 온실개스가 지금까진 공해가 아니었나? 물론 대다수의 과학자와 주정부와 환경단체들은 자동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등 온실개스를 공해로 규정하며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이를 믿고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줄곧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연방정부엔 환경을 보호하는 환경보호청(EPA)이 있다. 공해 규제 권한을 가진 기관이다. 그러나 EPA는 업계가 알아서 개스 배출양을 줄인다면 모를까 ‘공해도 아닌 개스 배출’을 정부가 강제로 제한할 수는 없다며 규제를 거부해 왔다.
지구가 고열에 신음한다고 세계가 아우성쳐도, 그 여파로 심화되는 가뭄과 산불과 홍수와 무더위를 겪어야 하는 미국인들이 계속 늘어가도 부시행정부는 구체적 대책 제시는 고사하고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아왔다.
어떻게 보면 가장 시급한 두 이슈, 지구온난화와 이민은 그 대응패턴에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연방대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영향을 체감하는 지역 주민들의 불평이 늘어난다, 손놓고 연방만 마냥 기다릴 수없는 주정부들이 단편적으로라도 자체 대책 마련에 나선다…이민법안들이 주의회에서 홍수를 이루듯 온난화법안도 마찬가지다. 현재 40여개 주의회에 300여개 관련법안이 상정되어있다.
대표적인 것인 캘리포니아의 온난화법이다. 2020년까지 자동차의 온실개스 배출양 25% 감소를 목표로 이미 주지사 서명까지 마쳤다. 2009년부터 시행 예정인데 배출규제는 연방소관이라며 EPA가 당장 태클을 걸어왔고 자동차업계와 함께 중지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2개주와 13개 환경단체등의 강력한 연합을 원고로 한 이번 대법원 케이스의 주요 쟁점은 1970년에 제정된 청정대기법에 대한 해석이었다. 정부가 규제해야 할 ‘공공위생과 복지를 위협하는 공해’에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개스가 포함되는가의 여부다. 클린턴행정부 때는 포함된다고 해석, EPA 정책으로 확립했는데 부시가 취임하며 규제대상이 되기엔 너무 불확실하다며 번복시켰다. 부시행정부에겐 이산화탄소 등 온실개스가 ‘공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케이스는 그러므로 부시 대 과학, 주정부 대 연방정부, 환경보호그룹 대 산업계의 대결이라 할 수 있었다. 대법원은 EPA는 온실개스 규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주정부가 소송을 할 수 있고, 규제거부를 결정하려면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 말고)하라고 판결했다. 과학의 손을, 주정부의 손을, 환경그룹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쉽진 않았다. 9명 대법관의 의견이 5대4로 팽팽히 갈렸고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의 ‘언제부터 판사들이 기후과학자가 되었느냐’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EPA에게 온실개스를 규제하라고 명한 것은 아니다. 부시가 판결 다음날 천명했듯이 행정부의 방침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이미 부시와는 반대방향으로 불기 시작했다. 이번 판결은 벌써 민주당 의회의 포괄적인 온난화법안 마련을 가속하하는 계기가 되고있다. 하원은 7월4일 독립기념일 연휴이전에 통과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업계도 각오는 하고 있다. 많은 대기업들이 판결 이전에 온난화법안 대책 수립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판결의 영향은 자동차나 전력회사를 넘어 훨씬 폭넓게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온난화가 환경문제를 넘어 가장 뜨거운 정치·경제 어젠다로 이미 떠오른 것이다.
내일 유엔의 제2차 기후변화 보고서가 발표된다. 21세기 중 기온상승 정도에 따른 세가지 상황 예측도 포함되었다. 화씨3.6도만 오르면 겨울이 따뜻한 정도로 넘어가지만 7.2도 오르면 가난한 국가는 대처하지 못하게 되고 그 이상 상승하면 어떤 부유한 선진국가도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전체생물 30% 멸종, 수억명의 환경 이재민등 섬뜩한 장면들이 제시되는데…이제 미국은 겨우 ‘온실개스는 공해’라는 판결을, 그것도 가까스로 얻어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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