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바닥을 드러낸다. 이웃나라 중국이나 한국과의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당당한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다져나갈 듯 기대를 모았던 총리다. 허나 그게 아니다. 추락하는 인기 탓인지 강경자세를 곧추 세운다. ‘종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서는 허둥대기까지 한다. 마이크 혼다 의원의 주도로 상정된 ‘군대 위안부 결의안’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 것인가.
2월 15일에 있었던 미 하원 ‘군대 위안부 청문회’에서 쏟아내는 위안부 출신 김군자 할머니와 네덜란드 국적의 백인인 ‘안 루프 오혜른’ 할머니의 한 맺힌 목소리가 총리의 잠자리를 불편하게 하였기 때문일까. 4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아베 총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한다.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하원의 결의안이 채택된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사죄하지 않겠다”고 강변하고 나선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승계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종군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증명할만한 증거는 없다’고 말할 만큼 참으로 담대하고, ‘일본도’ 휘두르며 ‘돌격 앞으로’ 외치는 “참 일본인”다웠다.
‘고노 담화’가 무엇이던가. 1993년 8월 4일, 당시 관방 장관이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가 발표한다. 종군 위안부 동원 당시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을 표시한 일본 정부의 공식 문건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깔아뭉개려 한다. 최측근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관방 부장관은 한 발 더 나간다. 25일, “종군 간호사와 기자는 있었지만 (엄밀한 의미의)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며 “그렇다고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뜻은 아니다”는 망언을 서슴치 않는다(한국일보 참조).
입안의 혀처럼 굴던 미국까지도 등을 돌린다. NYT, WP를 비롯한 언론이 나서서 “아베 총리가 일제의 종군 위안부 동원 사실을 부인한 것은 민주 국가 지도자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의 칼을 드러대는가 하면, 미 국무부 대변인 톰 케이시는 26일, ”우리는 분명히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계속 다루기를 바라며 저질러진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하는 솔직하고 책임있는 태도로 대처하기”를 촉구하였다. 이는 16일, 주일 ‘토머스 시퍼’ 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은 매춘을 강요당했다”며 “이는 당시 그들이 일본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꼴이 되었다.
일본의 어린 학생들까지도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런 호소를 무시하는 일본 정부는 정말 잘못됐고 최악”이라고 울부짖는다. 3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최로 열린 754번째 수요집회에 함께 한 일본 사이타마현 “자유의 숲 고등학교” 학생 3명 (후지와라료, 다지마 게이카(여), 고노우 가케루)은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고 성토한다. 그렇다.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고 싶어도 부모가 “딸을 팔았다”고 말하는 입, 그렇게 믿는 머리,그렇게 행동하는 가슴을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이 저렇게 곧고, 눈길이 저토록 음험한데 어이할 것인가.
미국 맥그로 힐 사가 2003년 펴낸 세계사 교과서(전통과 만남; 과거에 대한 세계적 조망)를 보면 위안부들의 참상은 더욱 가혹하다. ‘일본군이 최대 30만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집해 (성행위를) 강요했다’ , ‘14세-20세의 여성들이 군 매춘시설에서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적고 있다. 더욱 더 기가 차고 숨막히는 것은 일본군은 “위안부를 일왕(日王)의 선물이라며 병사들에게 제공했으며, 이들은 한국, 대만, 만주, 필리핀 등 동남아 각국으로부터 왔는데 80%가 한국 출신이다”고 쓰고 있다. 위안부들은 “날마다 20-30여명의 남자를 상대해야 했으며”, ”도망치려 하거나 성병에 걸릴 경우 일본 병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병사들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위안부를 대거 학살했다”고 전하고 있다(dongA.com 3/29 참조).
천인공노할 일이다. 이를 숨기려 하고, “그게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는 인종이 있다면 누가 그들을 “사람의 자식”이라 할 것인가. 손가락 하나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한 점 먹구름이 일본 열도를 뒤덮기 전에 깨어나기를 바란다. 여인들의 한(恨)이 하늘까지 사무쳐서는 안된다. 풀어야 한다. 그것이 당당한 “새 일본”의 앞길을 여는 첫 발길이라 이웃인 우리는 믿는다.
3.29.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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