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어느 골프장의 한국어 사용금지에 즈음하여
수키 윤/이스트베이 거주
이민 1세대라고 모두 영어를 못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모국어인 한국말이 우리 한국인들이 모인 장소에서 편하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영어가 공통으로 쓰여지는 공식 석상이나 비지니스 모임에서는 의례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미국 생활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일상 생활에서 한국말이 훨씬 편하다. 더구나 업무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 활동 중에는 돌아가는 세상 얘기를 속 시원하게 한국말로 하는 것이 편하다.
얼마 전 내가 겪은 작은 일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나는 몸이 쇠약해서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권고로 골프를 선택했다. 마침 좋은 조건으로 남편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프라이빗 골프장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엔 걷기도 힘들어서 9홀 돌면 쉬곤 했는데, 재미를 붙여 열심히 운동한 결과 이제는 골프채를 짊어지고 언덕을 뛰어올라갈 정도로 건강해졌다. 다양한 직업의 친구도 사귀고 또 몇 안되는 한인 회원들과도 가까워져 한층 운동에 재미가 더해졌다. 또한 클럽 내에서의 여성 골프회원이 되어 시간이 허용되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씩하는 토너먼트라든지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토너먼트에 지인들을 초청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여느 때처럼 한인 회원과 골프한 후 식사를 하며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 식탁에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한국인이 아닌 회원들도 함께 했다. 그런 며칠 후 한인 회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앞으로 골프장에서는 영어권 회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는 영어만 사용하라”는 전달을 토너먼트 위원장한테 받았다는 것이다. 이 한인 회원은 다시 다른 한인 회원에게도 이 말을 전해야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 생활 30년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영어가 세계 공용어 제 1언어라서 그래야 되는지 잠시 혼동되었다. 그러나 공식 회의라도 그렇지 영어가 미숙한 회원이 있다면 통역해서라도 서로 회의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건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 순간 울분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다른 한인 회원들에겐 내가 이야기 하겠다며 그 말을 전한 토너먼트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녀의 해명은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그녀의 해명은 우리 한인들이 한국말 하는 것이 타인종에게 무례한 인상을 주며 다른 타인종이 못 알아듣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에 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지당하고 타당한 말로 들릴 수 있는, 한쪽에서만 바라보고 하는 그런 해명이었다. 만약 영어에 미숙한 회원이나 게스트가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만 대화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똑같은 상황이다.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우린 편하게 한국말을 했고 그들 또한 편하게 영어(영어 밖에 모르겠지만)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서로 할 이야기가 있었을 때는 또 영어로 말했다. 아무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타인종의 말이 듣기 싫어서 (모르면 잡음으로 들릴 수 있으니까) 우리를 얕잡아본 그러한 처사였다.
나는 그 순간 이 클럽 대다수의 회원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판단이 되어, 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즉시 이-메일로 전 여성 회원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개인의 인격과 각자 자신의 근본을 무시한 처사라며 차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원 상호간에 각자 살아온 문화와 환경에 따라 배려가 있었음 좋겠다는 취지를
전했다. 또한 한인 회원간에 골프장까지 와서 영어를 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우리들의 대화는 영어로 속시원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아주 단순 화제에 국한될 것이며, 영어를잘 못하는 초대 손님에게 이 곳 골프장의 규칙상 한국말을 못한다고 하면 그러한 처사가 더욱 더 무례한 처사가 아닌지를 상기시켰다.
순식간에 회원들 간에 소문이 돌면서 모두 긴장한 분위기였다. 물론 골프장 측의 즉각적인 대답이 있었다. 이런 행동은 여성회원들 몇 사람의 의견일 뿐 골프장의 입장은 아니다 라며 정중히 사과했다. 우리가 영어를 제 1 언어처럼 구사를 못하는 것은 단지 핸디캡이 될 수는 있지만 수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도둑질을 했다든지,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치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핸디캡 아닌 자들이 핸디캡인 자들을 더 배려해주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언어상 핸디캡이 아닌 자들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언어상 핸디캡인 자에게 그들의 편리한 언어 사용을 금하는 것은 과연 정중한 처사일까? 물론 한 두명 한국말 못하는 회원이 한국말 하는 그룹(group)에 끼어 있을 때를 고려해 보라고, 그 때는 영어로 한국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것이 예의스럽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한인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제법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듣지만, 영어권에 있는 그룹에 혼자 섞여 그들의 농담을 알아듣는 척할 때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의 언어 사용 금지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언어의 자유는 때와 장소를 떠나 영어든, 일본말이든, 한국말이든, 프랑스말이든, 멕시코말이든, 방언이든 각자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라고 본다. 나 자신의 필요에 의한 언어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이 세상은 통역사가 필요없어도 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언어(한국어가 아니라도 좋다) 사용의 자유는 앞으로도 수치스러움 없이, 무례하다는 자격지심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의 자유라고 본다. 여하튼 한국말 대신 서툰 영어로한인회원들과 수다를 떤다고 상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영어로만 대화 한다면 연속극 주몽 이야기나, 얼마전에 감상한 타짜 영화 이야기나 재미로 노는 고스톱 이야기를 어떻게 재밌게 옮길수 있겠는가. 또 영어로 그런 이야기를 한들 그들은 얼마나 알아듣고 함께 웃을 수 있겠는가.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많은 직업인데 그런 장소에서까지 언어 사용의 제재를 받는다면 무슨 낙으로 취미 생활을 즐기겠는가. 비슷한 경우를 겪는 한인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 일로 시끄럽게 하면 왕따 당할까봐 다수의 의견을 쫓아서 조용히 넘어가야 한인들의 체면도 살리고 함께 멤버로써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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