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Keep playing!
We don’t stop playing because we grow old;
we grow old because we stop playing.
우린 늙기 때문에 놀기를 중단하는 게 아니다.
놀기를 중단하기 때문에 늙는 거다.
영국을 주무대로 활동한 아이리쉬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오의 ‘비트는’ 말씀입니다.
촌철살인의 기지와 ‘있는 대로 말하기’의 귀재였던 George Bernard Shaw.
때맞춰 하시는 말씀마다 금쪽같은 씨~니시즘 [cynicism 냉소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던 죠지 버나드 쇼오. 위선과 세련됨을 과감히 팽개쳐 버리고 ‘있는 그대로 [as is]’의 날카로운 직격탄을 마구 날려댄 쇼오.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금언이 많습니다.
평생 채식주의자로 또 언변이 뛰어난 연설가로도 활약했던 쇼오가 말합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한바탕 꿈이다. 사는 건 그저 놀기의 연속이다. 일도 휴식도 모두 이 ‘놀기’에 다름 아니다. 어린이들을 보라. 그들은 늙을 시간이 없다. 사람이 늙는 건 놀기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논다면 늙음도 죽음도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죠지 버나드 쇼오는.
알고 보면 다 ‘play’입니다. ‘work’도 ‘play’도 둘 다 ‘그 분’의 플레이입니다. 숨쉬고 먹고 일하고 쉬고 자고 깨고 살다 죽는 이 모든 과정이 곧 플레이입니다. 의식적으로 놀면 놀이 그 자체가 일이 됩니다. 일이 또한 놀이가 되고요. 우리 문화에도 그 밑바닥에 깔린 뿌리의식의 하나로 ‘인생일장춘몽’이란 거룩한 씨니시즘이 있습니다. 어차피 한바탕 긴 봄날의 꿈이 곧 인생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곤 이어집니다. ‘얼씨구 절씨구...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We don’t stop playing because we grow old;
we grow old because we stop playing.
우린 늙기 때문에 놀기를 중단하는 게 아니다.
놀기를 중단하기 때문에 늙는 거다.
어린이들이 노는 걸 보면 거의 무아지경에 몰입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저 노는 게 아니라 놀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사이’가 좁습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놀기와 안 놀기 사이가 모두 좁습니다. 시간의 경과가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몰두해 놉니다.
어른이 되면 놀면서도 일합니다. 그러니 일하면서도 놀게 됩니다. 사이가
벌어 집니다. 느슨해 집니다. 그 틈새로 늙음이 끼어 듭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예술혼에 불타는 장인은 죽기 직전까지 젊은 얼을 과시합니다. ‘그 분’을 굳게 믿는 신앙인은 저쪽 경계에 이르기 직전까지 늙지 않는 혼을 유지합니다. 어제 밤까지 정정하던 노사께서 오늘 아침 여여로히 좌탈입망의 경지를 보이십니다. 신성한 놀이에 늙음이 끼어들 틈새가 없습니다.
파안대소의 호탕한 얼굴을 보이는 파파지 [Papaji]께서 한 말씀 합니다.
’그것’을 안다면, 릴라 속에서 유희하라.
안으로는 홀로 존재하나 밖으로는 릴라 속에서 유희하라.
’릴라[leela]’는 산스크릿트 말로 ‘play’ 즉 놀기란 뜻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통해 벌이는 한 판 신나는 우주의 놀음, 그 릴라에 바쁘다 보면
늙을 사이가 없더라는 말씀입니다.
We don’t stop playing because we grow old;
we grow old because we stop playing.
우린 늙기 때문에 놀기를 중단하는 게 아니다.
놀기를 중단하기 때문에 늙는거다.
뭔가 비트는 톤의 버나드 쇼오께서 말귀가 둔한 바보들을 위해 부연합니다.
The power of accurate observation is commonly called cynicism by
those who have not got it. 예리한 관찰력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에 의해 종종 냉소주의라 불려지곤 한다. ‘있는 대로’ [as is] 말하는 데 뭐가 냉소적이냔 반문입니다. 그리곤 덧붙입니다. When a thing is funny, search it carefully for a hidden truth. 뭔가 우습게 들리거든 그 숨은 뜻을 신중하게 찾아보라.
끊임없이 놀면 늙지 않는다. 열정과 투혼 앞엔 늙음이란 없다. 늙음이란
늙음을 믿는 자에게만 찾아 올 뿐이다. 늙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삐 삶을 노는 사람들에겐, 죽기 직전까지 늙음이란 없다. 이렇게 과감한 무애의 삶을 94세까지 살다 간 죠지 버너드 쇼오, 그는 저 편으로 돌아 가기 직전까지도 진정 영원한 젊은이였습니다.
필자의 다른 ‘가슴 여는’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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