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일... 어지간히 바빴다. 내 일을 하느라고도 바빴지만 친구들의 공연들을 쫓아다니느라고 더욱 바쁜 한 주일이었다. 바삐 다니면서도, 지난 8일에 돌아가신 김기현 박사님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면서... 슬프기도 했으나 그 보다는 많은 기쁨을 누렸다.
2월초에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84 세의 의학박사 김기현 님은, 이후 약 한 달 동안 집안에 있는 모든 음반을 한 장씩 한 장씩 걸어놓고 평생 모으며 즐기시던 고전음악을 들으시며 기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다가 조용히 숨을 멈추셨다.
당신이 떠나신 후, 어떠한 의식도 가지지말라고 당부하셨으나 네 자녀와 친지들은 섭섭하여 어제 우리는 ‘파티’를 했다. 백여 명이 모였는데 절반 정도는 한인들이었고 나머지는 백인들이었다. 평생 지원하셨던 음악인들 중 몇몇이 와서 연주를 했고, 누구든 그를 기억하며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돌아가며 했다. 이들에 의하면 그는 -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든 의사든 환자든 어떤 문제가 있든 가장 믿고 의논할 수 있던 의사 선생님이었고...
포르투칼어, 이태리어, 불어, 중국어, 독일어, 피아노... 등을 끊임없이 배웠고 수학 공부를 했으며 문학, 고전음악, 철학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지적 호기심을 갖고 늘 독서와 음악감상을 하였고...
골프는 하도 못 쳐서 테니스로 바꾸어 운동을 했고...
와인을 좋아하여 아들이 장성해 집을 떠나자마자 아들의 방을 와인셀러로 변환시켰고... (그의 디너 파티는 유명했다. 그댁에도 와인잔은 수십 개이지만 각자 자기 몫의 와인잔을 8 개씩 가져가서 한 가지 와인을 하나의 잔에 따라서 마셨는데, 밤이 깊어가며 점점 오래 묵은 와인이 나오곤 했었다.)
음악을 사랑하여 많은 젊은 음악가들의 데뷰를 후원하였고... (나 역시 그런 경로를 통하여 그를 만났으나, 서로 마음이 금방 통하여 그와 함께 자원봉사자로 후원자의 입장에서 몇 년간 함께 일을 했었다. 음악가로서 늘 받기만 하던 내가 무대 하나를 위하여 말 없이 이름 없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애쓰는가를 배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들이... 딸들이... 동생이...
경기고등학교 후배들이...
서울대학교 후배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많은 백인 할아버지 친구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구며 그를 회상하는 것을 보며...
20여 년 옆집에 살아온 중국계 미국인 이웃이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흑, 울어버리는 것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준 그의 인격과 우정에 깊은 감사를 아니할 수 없었다.
추수감사절 만찬에 초대받아서 가보면 - 네 명의 자녀와 그들의 식구들 중에 ‘가족’ 외의 인물은 나와 내 남편 뿐이었다. 우리들을 좋아해서 그랬던 점도 있었겠으나, 캘리포니아에 친척이라고는 없는 우리들을 측은히 여기셨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국립국악원으로부터 위촉을 받아서 초연을 들으러 서울에 갔을 적에 그 역시 그곳에 와주셨다 - 그 공연이 내게는 정말 신나는 일이었는데, 내가 신나하니 그도 덩달아 신명을 내주셨던 것이다.
김기현 박사님은 형제처럼 절친했던 수학을 전공하셨던 조성률 박사님과 함께 우리들의 공연장에 참 많이도 오셨었다... 우리 말이야, 예쁜 식당에서 만나자고... 찻집에도 가자고... 두 분 어른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만날 적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듯했다. 그들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서로 독서한 내용을 주고받고...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여러 번의 즐거웠던 디너파티들...
그는 자신의 저택 대신, 누추한 내집에서 함께 12월 31일밤을 새우며 국적불명의 내 요리를 찡그리지도 않고 드시며 많은 음악을 함께 듣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심리학에 대한 토론을 하며 희부윰 밝아오는 새해아침을 함께 맞곤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오기 36 년 하고도 10 개월이나 먼저 태어났던 그는 응당 ‘늙어’있어야 했는데, 그는 늘 새로움을 공부하는 청년의 자세를 고수함으로써 84 세에도 젊게 사시다가 품위있게 조용히 그답게 가신 분...
우리는 어제 ‘파티’에서 그의 부재를 슬퍼하기 보다는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샴페인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맑은 마음과 맑은 얼굴로 선하게 사셨던 분 언저리에서 지냈던 세월에 감사한다.
오래 오래... 나는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나의 눈물은 후회하며 슬퍼하는 눈물이 아니고...
감사의 눈물이며 참친구를 그리워하는 기쁨의 눈물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이런 어른들의 보살핌으로 나는 여기까지 어찌 어찌 왔으니, 존재의 ‘없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고 함께 ‘있었음’을 기쁘게 회상하며 앞으로의 생을 이어갈 일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멈추어 서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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