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도 계절에는 어쩔 수 없는 듯 서울은 따뜻한 봄 날씨에 완연히 접어 들었다.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거주하는 K형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지난해 초에 만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랜만이고 의외로 서울에 까지 전화를 하였으니 무슨 급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머리가 다소 어수선 했지만 하여튼 반가웠다. 성격이 급한 그는 용건부터 말했다. 내용인즉 조금 있으면 은퇴 하는데 미국 생활이 너무나 단순해 뒤늦게라도 한국에 돌아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전화 속의 목소리가 하도 진지하고 굳어져 선뜻 대답 하기가 힘들었다.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그의 질문에 대답할 자격이 있는가?
하나의 지인으로 한다면 그에게 어떤 진솔한 답을 해야 할 것인가?
잠시 머뭄거리니 그도 필자의 난처한 입장을 이해하는 듯 답답한 마음에서 조언을 듣고 싶다며 낮은 톤으로 다시 이어 갔다.
은퇴를 앞 두었어도 그의 수명은 적어도 20년 이상은 더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는 미국에서 오래 동안 장사를 했으니 한국에 돌아 가서 조그만 한 구멍가게라도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 하고 있는 가게보다 더 작은 구멍가게를 하기 위해 한국에 나오겠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가게는 호구지책의 대안이고 한국이라는 다이나믹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함께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생활을 하였는지 짐작이 갔다. 또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분으로 부터 그런 활기찬 이야기를 들으니, 그 또래 선배님들이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에 존경심이, 나 자신에겐 정체된 사고가 재삼 부끄러웠다.
잠시 후 필자는 한국 생활 가운데 몇 가지 힘든 부분을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이하 S.F)에서 살면서 소중히 쌓은 크레딧과 따듯한 인간 관계를 모두 접고 한시적이지만 또다시 30년 전 초기로 돌아 가 새 출발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더욱 어려운 것은 한국 사람과 편안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그들과 우리는 피부색은 같으나 이젠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이야기를 듣던 그 분은 안개 같은 귀환의 본능에서 현실의 찬 공기에 실타래처럼 흩어진 감정을 되찾는 듯 머뭇거리며 산만해진 목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반복 되는 단조로운 이민생활에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안 느껴 본 이민자가 어디 있겠나.
샌프란시스코를 10년 전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와서 본 후 공통점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한인 업소들이 그런대로 산재한 재팬타운과 기어리 거리는 거의 그대로 라고 한다. 2-3년 전 기어리 끝 바닷가에 위치한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가 리모델을 했다는 정도이다. 그 분이 답답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미국이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보통사람 동포들의 생활이 비슷비슷 하다.
올림픽을 앞둔 중국이나 중동의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두바이 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개발 도상국을 제외하면 큰 외적인 변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외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살고 있는 현지 사회에 동화된 새로운 문화 창조와 자신의 다양한 문화 생활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거주지 중심의 이민문화를 더 없이 강조했던 것이다.
이민자 1세들에게 현재의 거주지는 바로 삶의 터전이고 행복한 생활의 종착역이라는 확고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필자가 지난 25년여 S.F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동포들의 저조한 행사 참여 의식이다.
매주마다 적지 않게 투자된 문화 행사와 종교행사 및 이벤트가 열리는데 대부분 동포들의 관심 밖에서 썰렁하게 진행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거주 지역에서 전통 문화를 세우기 위해선 동포들의 적극적인 동력과 확고한 참여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내에서 열리는 행사 중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공연과 전시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행사에 참석 하려는 노력과, 즐기려는 욕망이 부족하면 결국은 공허한 이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K형에게 어떻게 소일 하느냐고 물으니 낮에는 일하고 집에 오면 한국 비디오 보고 주일에는 교회에 간다고 한다. 스스로 고립되고 단조로운 3박자 울타리를 친 그가 희망처럼 역동적인 한국에 와서 적응 하기가 쉽겠는가? 필자로부터 속 시원한 대답을 원했던 그는 스스로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아쉬움이 많이 남은 듯 전화를 끊지 못했다.
아직도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돌아 가지 않고, 어설픈 민족주의 배타성에 모든 해외 동포를 중국의 조선족 정도로 착각하고 체류 동포가 온라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극장표 하나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차별된 거소증(해외 동포용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한국 정부의 동포 정책이 변화 되지 않는 한 한국 사회가 재외 동포들의 상식적 역 이민을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만은 필자의 확실한 대답이다.
이민 100년을 넘은 동포사회가 아직도 성숙된 동포 문화를 형성하지 못해 은퇴 후 무료한 생활이 두려워 이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아쉬움이 너무 크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살던 곳을 떠나 K형처럼 막연히 고향으로 돌아 가겠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결정이 아닐까.
K형의 열망이 어쩌면 해외에 살고 있는 이민 1세들의 숨겨진 고민일지도.
(서울에서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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