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섬세한 나레이션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 페스티발(S.F.IAAFF)이 3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극장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올해로 25살을 맞는 2007년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 페스티발은 저스틴 린(Justin Lin) 감독의 <피니싱 더 게임: Finishing the Game>을 선두로 하여 3월 2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 페스티발은 특히,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정체성의 균열과 세대 간의 불화라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고전적인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모국에 대한 이민자들의 문화적 괴리감과 고아의식이라는 독특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즉, 미국이라는 단일한 세계와 <나>의 관계성에 대한 숙고가 과거의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들이 주로 천착한 문제의식이었다면, 근래에 들어 미국과 모국과 <나>라는 다변적 관계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질적 변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완고한 현실과 불화한 이민자들이 내쉬는 가벼운 한숨을 넘어선 속 깊은 성찰의 영화적 재현으로써, 과거(모국)와 현재(미국)와 미래(주체)의 관계학이라 명명해도 될 것이다.
여기, 눈에 띄는 몇 편의 수작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다소 거칠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애쓰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시종일관 불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아야 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러한 내용의 솔직함과 형식의 거침으로 인해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 영화가 만들어 낸 매끈한 가짜 이미지와 상업성에 질린 영화팬들에게 충분히,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호섭 감독의 는 양공주에 대한 서사이다. 한국전쟁과 양공주라는 소재는 전후 한국문단과 영화산업을 지탱해온 가장 주요한 소재였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진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호섭 감독이 채택한 피사체는 양공주도 그들의 삶 자체도 아니다. 이호섭 감독은 과거 양공주였던, 그러나 미국인과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늙어가는 한 여인을 통해 진솔한 삶의 내러티브를 재현한다. 아줌마라 명명되는 이 여인은 한국인이기에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동시에 양공주였던 과거의 이력 때문에 한국인 사회로부터 또한 거부당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래저래 녹록치 않은 삶 앞에 더없는 솔직성과 재치로 맞서는 한 여인을 재현하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양공주라는 기호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양공주라는 기호는 오히려, 미국 사회 속에서의 고립감과 고독을 최대화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이호섭 감독은 56분 짜리 다큐멘타리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고독하게 늙어가는 미국 속의 한국 아줌마들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라고 말이다.
작가이며 영화감독인 데이빗 카플란(David Kaplan)의 는 동화적 수법으로 가벼움의 미학을 선보인다.
뉴욕의 차이나 타운. 악마라는 호칭을 지닌 수여사(Mrs. Sue)의 마사지 가게에 갇혀 노예처럼 일하는 중국 아가씨 예 지안(Ye Xian)의 이야기는, 카플란 감독의 말처럼 “차이나 타운 마사지 걸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가깝다. 금붕어를 나레이터로 설정한 점이나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촬영 방식 같은 것들이 영화를 더욱 동화적 세계로 근접시킨다.
영화 속 그 어디에도 리얼리즘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예 지안 자신조차 현실에 대한 지나친 낙관성을 보이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골치 아프게 예 지안의 미래라든가 차이나 타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에 대해서 일일이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카플란 감독은 현실과 꿈,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을 혼효하여 동화로 탄생시켰다. 어쩌면 카플란 감독은, 삶이라는 그릇이 엄연한 현실과 경직된 사실로만 채워질 때, 그 앞에 선 인간이 느끼는 그 ‘팍팍함’을 살짝 비껴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 유명한 오렌지족의 일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좌절한 젊은 이민자들의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생산한, 이 기괴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세기 말의 한국 사회는 분노하고 경악했다.
는 중국판 오렌지족 이야기와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을 살짝 버무려 놓은 영화처럼 보인다.
미국 생활을 접고 상하이에 정착하려 애쓰는 중국계 미국인 리암(Liam)은 인생의 낙오자이다. 자신의 부정으로 여자친구와 결별한 리암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별 관심도 없었”으며 말 한마디 통하지 않을 중국행을 단행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한없이 낯설어야만 할 중국땅에서 리암은 오히려 말할 수 없는 평화와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리암의 미래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라는 사회가 아니라 중국 속에 존재하는 극소수 상류의 삶 속에서만, 그리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미키(Micky)라는 여인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만, 이 행복감의 수위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은 리암이 느끼는 편안함의 근거를 무척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이 외에도, 보트 피플의 이야기를 그린 , 사랑과 미움에 대한 반 로맨스의 극의 , 그리고 베이징 내학 생의 연대기라 할 수 있는 등의 문제작들을 2007년 샌프란 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 페스티발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상세한 공연 일정은 www.asianamericanfilmfestival.org/2007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영화 기자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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