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한미 FTA 협상이 계속 살아숨쉴려면 양국은 오는 3월 30일(금요일) 근무시간이 끝나기 전에 최종 협상안을 마련하고, 이를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협상안 서명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야기는 확 달라진다. 미국의 협상 주체가 바뀐다. 행정부가 아닌 의회가 된다. FTA 협상을 계속 원한다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국익은 물론 당과 선거구 주민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의원들로 구성된 협상단과 마주 앉아야 한다. 이들과 싸워 두 나라의 ‘이익의 균형’을 이끌어내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결단의 시간’이다. 한국이 국가경쟁력을 높이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침탈을 이겨낼 수 있는가. 개방과 개혁이 아니면 길이 없다. 그렇다면 국가 이익을 위하여 지금 한미 FTA를 취할 것인지, 버려야 할 것인지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나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준에 임할 국회의 문제이고 정당의 문제이다. 정치인 그리고 국민 모두의 문제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제8차 실무협상이 지난 12일 끝났다. 협상 타결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는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는 협상 결과에 만족한다.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도 “한국에서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협상 타결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고 밝히면서 “(협상이) 반드시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실무진의 밝은 모습이다.
그러나 실무진만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자동차, 농산물, 섬유, 의약품, 서비스, 원산지 문제 등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3월 19, 20일부터 시작되는 고위급(high level) 회담의 ‘빅딜’로 넘어간 문제들이다. 정상을 향하여 넘어야 할 아홉번째, 열번째 고개를 맞은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그럴수록 양측 고위급 회담 대표들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날씨가 변덕도 심하고 비바람이 치는 수도 있다. 남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 때쯤이면 서로 내세우는 국가 이익과 명분의 충돌도 더욱 사나울 것이다.
지난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의견도 있다. ”(FTA협상은) 그래서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고, 기간 연장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으며, 그 범위 안에서 높은 수준, 낮은 수준, 중간 수준 모두 철저하게 따져 국가적 실익, 국민 실익 중심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 원칙과 관련 “경제 외적 문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며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실익 위주로 면밀하게 따져서 이익이 되면 체결하고 이익이 안되면 체결 안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노 대통령의 협상 체결 의지가 변하고, 물러진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협상하시는 분들이 관계 부처와 협조해서 철저하게 장사꾼의 원칙으로 협상에 임하라”는 당부에 더욱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도 14일, 한미 FTA 협상과 관련, ”전적으로 경제적 논리에 따라 국익, 실리적 측면을 확보한다는 자세에서 높은 수준의 FTA를 우리 이익에 맞게 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협상 실무 수석대표, 관계 장관 그리고 대통령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국익과 실익”만을 내세우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측 협상 대표들의 짐을 덜어준 꼴이다. 이 눈치 저 눈치 보지말고 “장사꾼 셈법”으로 당당히 나서라는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측이 한국의 국가 안보 문제나 북핵과 6자회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그리고 동북아 집단 안보 체제 같은 경제 외적 변수를 막판 협상 무기로 쓰려한다면 안될 일이다. 쐐기를 박아야 한다.
한미 두 나라는 협정 전체에서 ‘이익의 균형’을 얻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FTA’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이 자동차, 섬유 분야에서 한 몫 잡지 못하고, 무역 규제 분야에서 재미보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황”이다. 지난 25년 동안 미국의 무역제재를 받은것은 대미 수출량의 6.8%, 373억 달러 규모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표기 문제도 물러설 수 없다. 남북 교류, 협력사업은 물론 북한의 개방을 이끄는 전초기지로서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측도 “쌀” 말고는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루고,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줄 것은 주어야 한다.
3월 19-20일, 김-커틀러 회담이 있다. ‘열 고개’ 정상으로 가는 첫 발이다. 두 “쌈꾼”이 아름다운 끝맺음 자리에까지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어느 네티즌 말같이 “언제나 당당하고 결연한 눈빛”의 김종훈 수석대표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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