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 씻어 밥을 지으며 곶감과 대추를 넣고/ 잣에다 꿀까지 맛있게 섞네/ 집집마다 약식 짓기가 이제는 풍속이 되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지 않고 조상 사당에 올리네
이 시는 상원이곡 25수 가운데 두 번째 나오는 담정(潭庭) 김려(金?)의 ‘약식’이라는 시이다. 상원(上元)은 정월 대보름날을 뜻한다.
신라의 소지왕이 정월 보름날 찰밥을 지어 신령스러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 은혜를 갚았다. 그로부터 명절 음식의 하나로 삼아 조상의 제사상에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지왕의 까마귀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사연은 이렇다.
신라 21대 소지왕(비처 왕) 즉위 10년 무진(488년)에 왕이 천천정에 거동하였는데 까마귀와 쥐가 임금 앞에 와서 울며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으로 따라가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왕이 기사를 시켜 따라가게 하였다.
남쪽으로 가다가 피촌에 이르러 돼지싸움 구경에 까마귀 간곳을 잃고 찾아 헤매다가 한 못가에 이르니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와 편지 한 장을 전한다. 그 편지 겉봉에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이를 본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야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며 편지를 열어보지 않으려하니 일관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보통사람이고 한 사람은 곧 왕입니다” 왕이 그럴듯하게 여겨 편지를 열어보니 “거문고 갑을 쏘라”고 되어있다.
왕이 궁중에 돌아와 내전의 한편에 놓여있는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뒤, 열어보니 왕비와 중이 함께 죽어있다. 내전에서 향을 사르며 공을 닦던 중이 왕비와 간통을 했으며, 밤이 깊으면 합심하여 왕을 죽이고자 그 갑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보름날을 까마귀를 기(忌)하는 날로 삼아 찰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하며, 노인이 나와 편지를 전해준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2 기이(紀異) 상에는 ‘射琴匣: 거문갑을 쏘아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명절 풍속 중 정월 대보름날 치러지는 풍습이 가장 다양하며 더러는 현재에까지 지속되어 내려오는 풍습이 있다. 또 우리 동포사회의 많은 단체들이 이날을 전후하여 잔치를 벌이며 친목과 우애를 다지기도 하는데 그중 몇 가지는 그 유래를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 하여 소개한다.
▲노용란(?龍卵)=대보름날 저녁에 여인들이 무리를 지어 물동이를 이고 시냇가로 가서 물위에 비친 달을 떠(퍼)가지고 오는데 이것을 “용알 건지기“ 또는 ”노용란”이라 한다. ▲풍년빌기(祈年)=묵은 배추잎(시래기)이나 김 또는 김장 배추 잎에다 밥을 싸서 한입 베어 먹고는 ‘열 섬’, 두입 베어 먹고는 ‘스무 섬’, 세입 베어 먹고는 ‘서른 섬’이라 불렀는데 이를 “풍년 벌기“라 했다. ▲편전(便戰:편싸움), 석전(石戰:돌싸움)=마을 장정들이 모여서 편을 나누어 돌팔매 싸움을 하는데 이를 돌싸움 또는 편싸움이라 했다. ▲첫 달 보기=민간에 전해 오기를 대보름날 저녁에 떠오르는 달을 남보다 먼저 보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젊은 아낙네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 다투어가며 먼저 달을 보려고 하였는데 이를 첫 달 보기라 한다. ▲달맞이=늙은 농사꾼들이 보름달을 보고서 그해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를 점치는데 달이 두터워 보이면 풍년, 엷어 보이면 흉년, 높이 뜨면 산골농사가 잘되고, 낮게 뜨면 들농사가 잘된다. ▲귀밝이술=대보름날 새벽에 찬술을 한 잔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 한다. ▲부럼=정월 대보름 아침에 마른 호두와 생밤을 깨물면서 ‘부스럼 깨기’라고 비는데 이를 또 ‘이 굳히기’라고도 한다.
그밖에 과일나무 시집보내기, 줄 당기기, 쥐불놀이, 연 날리기, 더위팔기, 널뛰기 등이 있고 다리 밟기가 있다.
▲다리밟기=정월 대보름날 밤 장안의 남녀들이 무리를 지어 광통교(廣通橋)부터 시작해서 성 안의 돌다리들을 두루 밟으며 건너는데, 이것을 ‘온갖 병 쫓기’ 또는 ‘다리 밟기’라고 한다. 청계천에는 28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광교에 두개가 있었다. 큰 광교는 종로구 서린동에 있었고, 작은 광교는 남대문로 1가 23번지 남쪽에 있었다 한다. 이 일대를 광통방이라 하였는데 대보름날 밤에 열두 다리를 밟으면 1년 동안 다리를 앓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 밤에는 서울사람들이 모두 나와 밤늦도록 돌다리를 밟았다는데 광교와 수표교에 가장 많이 모였다고 한다.
이문형 <전 워싱턴 문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