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접어든 이민 생활에서 심도 깊게 미국 나라와 미국인들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새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눈코 뜰 새도 마음에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더욱더 이민 생활의 삶을 살찌우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상대방의 모든것을 알아야만 하기에 밤잠도 설처 가면서 생각에 몰두 했었다.
미국은 17세기부터 앵글로색슨을 비롯한 유럽의 각 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개척한 나라이다. 그래서 미국 문화를 가리켜 유럽의 모든 문화들이 다 ‘섞어서 녹은 가마솥(melting pot)’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초창기 이민의 주류를 이룬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계 색체가 아직 까지도 강하게 미국인들의 정서 속에 남아 있다. 영국의 적극적인 무역, 비즈니스 정신과 합리적인 정부 체제와 법안, 상류층들의 귀족적 매너와 고급 사립학교의 엘리트 교육은 아직도 미국 상류층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인들의 거침없는 창조정신, 철저한 재정 감각, 비즈니스 조직운영, 모험정신이 미 중서부 지역 사람들 속에 배어 있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투쟁정신, 튀는 개성, 자유분방한 삶의 스타일도 미국인들의 성격의 일부가 되었다. 독일의 꼼꼼하고 철저한 장인정신은 초창기 미국의 빠른 산업을 도왔다. 이들 모두 유럽 국가들이 교육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덕에 오늘날 미국은 세계 최우수 대학 800개중 3분의 2가 넘는 대학들을 보유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히스패닉계와 아시아계의 많은 인구가 대량 이민을 오기 시작함에 따라, 이들 민족들의 특성 또한 신세대 아메리칸의 이미지 재구성에 기여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강점은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민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바꾸어 나간다는데 있다.
미국은 대단히 넓은 나라이기에 지역별로 확연히 다른 개성이 있다.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버지니아, 메릴랜드를 중심으로 한 동부는 오랜 역사와 사계절이 있고,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까닭에 사람들이 아주 보수적이며,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 이들은 일 중심적이고 삶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반대로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을 중심으로 한 서부는 따스한 날씨가 사계절 계속되는 곳이며, 사람들의 생각, 복장도 캐주얼하고, 상당히 느긋한 편이며, 예술 문화가 지배적이다. 시카고 오대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은 동부와 서부의 중간형이다. 애틀랜타, 마이애미, 댈러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는 그 어느 지역보다 변화에 둔감한 편인데 연방 정부의 권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도 하다.
19세기 초반부터 서부 개척을 통해서 어렴풋이 남아있던 유럽의 기질을 벗고 미국인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광활한 땅을 인디언과 싸우고 질병을 이겨내며 개척한 미국인은 그 과정에서 개인주의와 독립정신, 자활정신을 갖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실용주의적으로 변해갔고, 서부의 거친 환경은 미국인들을 조급하게 했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했다.
미국인들은 언제나 시간에 쫓겨 왔다. 너무 바빴기 때문에 멈춰 서서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탓으로 급료 제도 역시 월급제가 아닌 주급제나 15일제로 급료 지불 형태가 지금껏 이어져 오는 것 같다. ‘Time is money’ 란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19세기말 초고속으로 서부 개척을 이루고 20세기 중반에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정말 오늘의 한국 뺨칠 정도의 ‘빨리 빨리’의 숨 가쁜 삶을 추구 했다. 그러나 그 빠른 외면적 성장에 미국인들은 “TAKE IT EASY”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RELAX’ 즉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해 라고 한다. 여기에는 급성장한 최강자의 자리에 도달한 미국인들의 여유가 담겨져 있고 동시에 지나치게 빠른 변화의 흐름에 지친 나름대로의 피로감이 있기 때문에,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휴가 때는 아무런 미련없이 가족과 편안하게 즐기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됐다.
때로는 흑백이 분명한 미국식 방식이 좋을 때도 있지만 한국인의 경우는 ‘예’와 ‘아니오’를 칼같이 가리는 것보다는 음과 양을 다 수용하는 동양의 조화적 개념이 우리의 생활 정서에 배어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터널을 파기 위해서 양쪽 끝에서 동시에 파고 들어갔을 때 두 팀이 엇갈리면 미국인들은 “실패했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해도 굴이 두개 생겼으니 좋지 않으냐?”라고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민자로서 제2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바에야 미국식 방식과 힌국인의 합리적 방식을 잘 접목시켜서 미국인들의 기질을 이해하고 그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생활도 보람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민족의 뿌리 깊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