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일까 오바마일까, 줄리아니일까 매케인일까, 아니면 다른 새로운 얼굴이 등장할까. 이 궁금증이 내년 이맘때쯤이면 풀리게 될 것 같다.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민주·공화 양당 후보가 2월 중순도 되기 전에 결정될 것이라는 뜻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하여 플로리다, 일리노이, 텍사스, 뉴저지, 미시건 등 큰 주들이 후보를 뽑는 주 예선을 2월로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보 결정에 대한 각 주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캘리포니아 주상원은 지난 주 내년 대선 예선을 6월3일에서 2월5일로 앞당겨 실시하자는 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도 이번 주 토의를 거쳐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고 이미 적극 찬성을 표한 주지사도 서명을 약속했다. 캘리포니아의 2008년 2월5일 예선 실시는 사실상 결정된 셈이다.
솔직히 그동안 대통령 선거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에겐 맥 빠진 행사였다. 보통 1월초 아이오와 코커스로 시작되는 각 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전은 캘리포니아 예선이 실시되는 6월에 접어들면 대세가 완전히 판가름 나 버린다. 그러니 전체 약 540명 선거인단 중 가장 많은 55명을 보유한 최대의 주이면서도 타이밍을 놓친 캘리포니아의 ‘표’는 별 대접을 못 받아 왔다. 이미 당락이 결정되어 버린 상태이니 후보들의 유세도 소홀했고 유권자들 역시 투표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표밭’으로 낙인(?) 찍히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는 너무 안심해서, 공화당 후보는 아예 포기해서 잘 돌보지 않는, 이래저래 찬밥 신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에게 캘리포니아는 현금자동인출기, ATM으로 통한다. 표와 함께 선거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돈인데 캘리포니아 부유층의 기부없이는 당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대선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모금된 선거자금은 1억8,400만달러나 되었으나 전부 타주 유세에 쓰여졌다는 것이 주 정치인들의 주장이다. 유력 후보일수록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유세는 안하고 잠깐 들러 부유층 모금파티에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전국이 흥겨워하는 하나의 축제다. 그리고 그 축제는 아이오와 코커스로 공식 개막된다. 말하자면 첫 번째 후보 지명전이다. 그 전까지 각 당의 후보들이 난립하다가 아이오와 코커스를 치룬 후 서너명으로 압축되는 것이 상례다. 이렇게 선거판이 정리되는 한편 무명의 후보가 하루아침에 스타로 뜨기도 한다. 76년의 지미 카터, 92년의 빌 클린턴이 아이오와 코커스가 배출해낸 스타들이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함께 미 대선의 향방을 가름하는 또 하나 최대 격전지는 뉴햄프셔 예선이다. 후보 중 1,2위가 결정되는 전환점으로 여기서 부진해 출마를 포기한 후보도 여럿 있었다.
수십년 ‘전통’으로 인정받은 이 두 곳의 중요성은 선거 때마다 미디어의 집중보도로 더욱 탄탄해지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아이오와주의 인구는 270만이고, 뉴햄프셔는 110만에 불과하다. 왜 이 작은 주 유권자들에게 대통령 선거의 결정권을 맡겨야 하는가. 주민 3,600만명의 캘리포니아는 언제까지 뒷좌석에 앉아 구경만 할 것인가 - 이런 불편한(상당히 일리있는) 심기가 내년 2월5일 조기예선을 성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판론도 없지는 않다. 우선 비용이 7천만달러에 달한다니 낭비라는 지적도 틀리지는 않다. 큰 주들의 예선이 몰리는 연초에 후보가 결정되니 검증할 시간도 충분치 않고 이미 돈과 지명도를 갖추지 못한 신선한 얼굴의 부상은 기대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나온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유권자에게는 장점이 훨씬 많다. 우선 후보들의 직접 유세가 잦아질 것이다. 이민, 공해, 연방예산 배정 등 캘리포니아 이슈에 보다 구체적 공약도 제시할 것이다.
지난 20여년 맥빠진 선거에도 충실하게 한표를 행사해온 ‘모범 유권자’인 나는 조기 예선을 적극 지지한다. 더구나 내년 미 대선은 첫 여성대통령, 첫 흑인 대통령, 첫 몰몬 대통령, 리버럴한 공화당 대통령…그 누가 되든 역사적 한 획을 그을 확률이 다분하다. 이 역사적 사건에 내 한 표도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익사이팅하지 않은가.
미국선거에 무관심했던 캘리포니아의 한인들도 새롭게 갖게 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설레임으로 좀 더 적극적 유권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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