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그리움이다. 어찌 저리 도도하고 자애로운 빛일까. 수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태고에 인연 끊지 못하고 흐린 날은 구름 뒤에서 파도보다 더 창백한 빛깔로 울었던 게다.
반쪽의 몸으로도 달은 저토록 바다의 가슴을 더듬고 있는데 여전히 생떼만 쓰는 저 철없는 바다를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내님이 달빛만 같다면야 미움도, 증오도, 이별도, 연민으로 변질되는 저 습성 속에 내가 파도가 되어 속살을 던져보고 싶다만.
눈에서 튀는 불놀이나, 팔딱거리는 방정스러운 심장, 찌릿하다 방전되는 전류의 답습 같은 현상들을 인연이나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울고 웃는 일들이 드라마 같아 실습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를 않는다.
신세타령을 하려고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해변을 걸은 것은 아니었는데 모래위에 흐릿하게 누워 일렁이는 인생의 그림자가 물결위에 출렁한 밝은 달빛 앞에서 왠지 미생물처럼 느껴져 울적했다. 아무래도 향수병이 중증인 때문인 것 같다. 저 달이 차면 대보름이다.
내 기억속의 한국은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가슴에서 오곡 백화가 만발하고 저절로 시 한 수 흘러 나올만한 정서적 분위기의 형성이 있었다. 계절을 견디고 승리한 잠언 같은 들판 하며, 생의 옹이를 물고도 당당하고 청청한 소나무, 첩첩인 산 봉오리를 쓸어안고 수절하는 여인의 표정같이 다소는 싸늘하고 다소는 원망어린 듯한 달빛 속에 바람은 소리도 못 내고 잔가지만 흔들며 맴돌았었다. 우리 선조들은 저 청아함만으로도 모자라 내면에 혼탁이 없고 제 몸에 붙은 잎사귀의 방종을 허락하지 않는 대나무를 집 가까이 심어놓고 묵화도 쳐서 걸었다.
그런 풍경 속에, 구부러진 붓끝으로 썼어도 단번에 날이 서던 선비들의 꼿꼿한 글은 섬광이 번뜩이면서도 풍류가 그득했다. 그 글들이 시대의 암울 속에서 마음과 인격을 추스르고 오늘을 쌓아 올릴 수 있는 민족정신의 지주로 한몫 했대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천륜과 인륜에 근거를 둔 교육이 우선 되었겠지만 눈에 보이던 자연 정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LA는 계절 속에 뼈가 없어 제 품위를 갖춘 나무색이 없다. 대나무가 그리워 어느 박물관 숲으로 보러 갔다가 산발한 잎을 손으로 헤치고 마디를 더듬어 확인해야 했다. 소나무는 정신을 놓고 무작정 길이만 늘여 조금 멀리 있으면 눈을 크게 뜨고 거듭 확인해야 소나무인줄 알 정도다. 잎이 넓적한 팜 트리는 우리 정서의 이국이다. 도무지 추억의 달빛 하나 날씬하게 걸어 놓을 나무 가지가 없다.
그래서인지 명절이면 한국 마켓마다 성황을 이룬다. 마음으로 고국을 가는 것이다. 강원도 더덕에서부터 부산을 지나 제주도 산출물 까지 각도를 담아들고 와서 향수를 헹구고 추억을 굽고 한 상 고국을 차려놓고 먹는 것이다.
가끔 멋진 풍경을 찾아 여행도 하고 LA는 태평양 바다를 가까이 끼고 있어 수시로 해변을 거니는 낭만이 있기는 하다. 맑은 날의 해변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만은 뉴포트비치에 파도가 태양빛에 투영 되어 투명한 초록으로 곡선을 그리며 일어서는 광경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바닷물이 제 몸 부패하지 않고 방대한 생물들을 살리려고 산소를 흡수하는 저 필살의 몸부림을 여기서는 적나라하게 볼 수가 없다. 한국 서해안처럼 경사가 완만하여 썰물이 갯벌만 남겨 놓고 멀리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동해안처럼 깊이에 갇혀 몇 미터쯤 가는 척하며 슬며시 수면만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이다.
잠수하지 않는 한 별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허구한 날 왔다 갔다 하는 파도다. 천하제일의 춤도 아닌 것을, 비만한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날아 본들 뭐 그리 신선하고 흥미로울 것인가.
인생의 눈이란, 피고 지고 죽고 살고 희로애락 무쌍한 생명의 조화를 확인하고 마음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영혼의 심장이 팔딱 거리지 않는 한 곧 실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보고 또 보고, 그야말로 침묵의 바다다.
고요한 산사에 있으면 나오느니 경이라고 하루 종일 바다에 있던 날 돌아와 저녁에 쓴 시가 /강물이 되었거나 샘물이 되었거나 바닷물이 되었거나 빗물이 되었거나 근원은 땅이니 명칭을 헤아려 무엇 하리. 촐랑촐랑 흐르면 냇물이요. 조금 더 의젓하면 강물이라 하고 오수가 스며 부정함은 흙에 주고 되돌아 나오면 샘물이라 하는 것을 /경같이 되어버렸다.
달이 오늘은 반쪽이라 수면 위 가까이에서 길을 내며 흐르지만 점점 바다와 떨어져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만월이면 공중 높이 떠 독야청청 할 것이다. 지상에선 그로인해 많은 밀어들이 태어나고 바다는 다소의 어두움 속에 이별을 앓으면서도 다시 오는 임을 기다리며 설렘으로 파도칠 것이다.
그렇다고 바다가 달 없으면 못 사는 것은 아니다. 달의 인력이 아니더라도 태양과 지구사이에 비중력이 결부된 입자 대기권에 의해 지구의 대기가 압축되어 똑같이 지구가 한번 자전하고 똑같이 하루에 두 번 썰물과 밀물이 이루어진다고 다음(daum) 신지식에 기록되어있다. 지구의 생명들을 위해 철저히 안전장치 된 창조의 원리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훼손하지만 않으면 자연 속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탄성만 지르며 살아도 되도록 넘치는 온유가 함께 있는 것 같다.
한 뼘의 햇살과 순간어치 공기로 온 생명들은 살아가고, 아무도 삽질해 주지 않아도 샘이 솟고 시내와 강은 우직하게 흐르며, 눈먼 바람까지도 지상을 달리며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는 무한한 혜택 속에서 별 일도 없으면서 한 주먹 심장이 절여지는 것은 행복이라는 단어의 오독 때문이 아닌가싶다.
이런 인생 논리 속에서도 가슴을 앓으며 밤의 해변을 헤매고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 때로는 더 쓸쓸하게 만드는 향수 때문이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서로 얼굴 분별하기만도 벅찬 거센 땅이다. 지퍼달린 사계절용 옷을 다리 한쪽은 떼어 내고 한쪽은 그대로 입은 사람들이 끌어안고 활보하는 어색한 땅.
내 고운,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는 어디에 두었는가.
약력: 순수문학 신인상 수필등단, 문예운동 신인상 시등단. 허균 문학상, 시집 ‘걸어다니는 언약’, 영랑문학상 수상
<정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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