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직장의료보험이 생긴 것은 2차 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임금 동결령을 내린 후였다. 우수 인력 스카웃 조건으로 봉급을 올려주지 못하게 된 회사들은 대안으로 베네핏을 제시했고 그중 첫째가 의료보험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임금이 오른 후에도 의료보험 혜택은 노조의 입김으로 한층 강화되었다.
직장보험이 더욱 탄탄해진 것은 1954년 연방의회가 세제혜택을 입법화하면서였다. 고용주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사업 경비로 처리, 세금공제 대상이 되었고 종업원이 받은 보험료 혜택은 과세대상이 아니었다. 세제혜택을 기반으로 직장의료보험은 그후 50년동안 계속 확대되어왔고 현재 미국민의 약60%인 1억7천만명이 직장을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그 반석같았던 직장의료보험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노조지도자들도 이제 고용주부담 직장보험의 시대는 갔다고 시인한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중병에 시달리며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선언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의료비가 요인이다. 의료보험료는 대기업에도 가장 큰 고민거리다. 너무 많이, 너무 빠르게 오르고 있다. 막대한 보험료 부담이 국제경쟁력 약화의 주범이라는 불만도 계속 커진다. 국가가 보험료를 부담해주는 외국의 기업들과 경쟁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전 못지않게 뜨겁고 시급한 미국의 이슈가 의료보험개혁이다. 의료비가 급상승하면서 무보험자는 여기가 제3세계인가 싶게 급증하고, 유보험자들은 자칫 이직, 실직과 함께 보험도 잃게될까 전전긍긍하고, 중소기업들은 보험료 감당 못해 잇달아 포기하고, 대기업들은 국제경쟁에서 밀린다고 아우성이다. 표밭과 돈줄이 동시에 소리치는데 정계가 귀 막고 있을 수는 없다. 새해 들어서만도 이미 상당수의 개혁안들이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으로 각각 제시되고 상정되었다.
헬스케어개혁에 있어선 당과 이념이 달라도 목표는 같다. 의료비를 낮추고 전 국민이 의료보험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의는 거기까지다. 해결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일장일단, 일리도 있고 억지도 보인다. 현재 제시된 대표적 개혁안들은 아주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국가의료보험으로 민주당 진보 진영이 추진하고 있다. 기본적 의료보험을 단일화된 국가운영 시스템에 의해 전 국민에게 제공하자는 내용이다.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은 이미 그 첫 시험단계로 메디케어를 어린이와 55~64세 연령층에 확대적용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여론의 지지는 상당히 넓은 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극히 비현실적이다. 민간보험업계의 파워만 해도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반대방향이다. 개인이 제각기 가입하는 것이다. 대신 가입자에겐 세제혜택을 준다. 개인의 보험선택에 따라 세금혜택 액수가 좌우되니 보험 남용에 의한 의료비도 훨씬 줄어든다는 취지다. 공화당이 추진하는 개혁안의 기본 개념이다.
셋째는 최근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발표한 개혁안처럼 현 체제하에서 전주민 보험가입을 목표로 한다. 개인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고, 직장보험 제공을 안하는 고용주는 벌금을 내야하며 빈곤층은 아니라도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은 정부가 부담해주는 식이다. 일부 주정부들이 시행하거나 추진중인 개혁안들이 여기에 속한다.
지난주 국정연설을 통해 부시대통령이 밝힌 개혁안은 ‘공평한’ 세제혜택에 포커스를 두고있다. 직장보험에만 주어졌던 세금혜택을 개인의 보험가입에도 확대한다는 것이 큰 그림이다. 현재 세금을 안내고 있는 직장보험혜택을 모두 과세대상으로 포함시키고 대신 일정 액수까지는 세금공제혜택을 주는 것이다. 직장보험이든 개인보험이든 가족당 의료보험료 중 1년에 1만5천달러까지는 세금공제를 받게된다. 커버리지가 좋은 비싼 보험에 들어있거나 의료비지출이 많다면 오히려 지금까진 안내던 세금을 내야한다.
한 한인 직장인의 경우는 그리 나쁘지 않다. 고용주의 부담분까지 포함 그의 가족이 낸 2006년 보험료는 7,700달러였다. 부시안이 시행된다면 첫해에 1,400달러정도의 세금혜택을 받게 된다. 물론 부시의 개혁안은 세부사항 없이 큰 뼈대만 밝혔는데도 즉시 맹공격을 받았을만큼 허점도 많다. 그러나 비교적 개인보험가입율이 높은 한인들에겐 적지않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의료보험개혁은 2008년 대선의 핫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관심없는 미국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 생계와 직결된 과제다. 어떤 제안이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인지 정도는 공부해 두어야 한다. 의료보험 개혁의 향방은 미국정치가 내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일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rokpark@koreatimes.com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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