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던진 승부수
‘전쟁터에선 말을 갈아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이미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계획을 바꾸거나 리더를 교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비슷한 표현이 미국에도 있다. ‘Don’t swap horses in midstream(강 한복판에서 말을 갈아타지 말라).’ 말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은 이미 어렵고 위험한 일인데 강을 건너다 강 복판에서 말을 갈아타기란 더 어렵고 위험하니 피하라는 뜻이다. 인생의 금언 중 하나가 한글과 영어에서 표현방식과 뉘앙스까지 흡사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물론 전쟁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말을 갈아타야 할 일도 있다. 말이 부상을 입었는데 전쟁중이라 갈아탈 수 없다고 고집해 다친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문제는 과연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냐 하는 것. 꼭 필요하다면 바꿔야 한다. 하지만 강 한복판에서 말을 갈아타려면 그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인식과 준비는 되어있어야 한다. 일이 진행되는 중간에 큰 변화가 일으킨다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에이전트를 교체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에이전트라는 스캇 보라스를 해임하고 배리 본즈의 에이전트로 유명한 또 다른 수퍼에이전트 제프 보리스와 손을 잡았다. 언급하기 힘든 개인적인 불편함이 있었다는 것이 본인이 밝힌 교체이유다. 물론 아직까지 뛸 팀을 구하지 못한 보라스에 대한 실망도 분명히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박찬호로서는 ‘강 한복판에서 말을 갈아타는’ 도박을 감행한 셈이다.
과연 이 도박은 꼭 필요했을까. 대부분 팀들이 전력보강을 마친 시점에서 에이전트를 바꾼 박찬호는 이제 모든 절차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보라스가 얼마나 박찬호 계약준비를 해 왔는지 몰라도(현재 상황을 보면 그다지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다) 새 에이전트 보리스는 모든 것을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팀들이 박찬호가 어떤 선수인지 훤히 다 아는 상황에서 이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시간이 별로 없다. 선수와 에이전트가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라스가 레드삭스에 박찬호를 클로저로 쓰는 것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 박찬호측이 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고 반박했던 사실에서 이미 양측간의 균열이 노출된 바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 직접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부문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캐치하는 것은 서로를 아주 잘 알기 전에는 힘들다. 보리스가 보라스만큼 박찬호를 잘 알지는 못할 것임으로 이런 점들로 보면 이번 결정은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박찬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결과가 말해주듯 보라스는 이번 오프시즌 박찬호를 위해 한 일이 없다. 다른 거물급 선수들 계약에 바빠 이젠 평범한 선수가 된 박찬호를 뒷전으로 밀어둔 모습이 역력하다. 하나 못해 그 흔한 ‘카더라통신’(루머)에서조차 박찬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은 에이전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다저스와의 관계다. 지금 박찬호가 계약을 원하는 최우선팀은 다저스라고 할 수 있는데 보라스는 이번 오프시즌 J. D. 드루의 계약파기 사건으로 다저스 단장 네드 콜레티를 크게 화나게 했다. 보라스가 있는 한 다저스행은 성사가 어려웠다.
물론 에이전트를 바꿨다고 다저스행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다저스에는 여전히 박찬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는 훨씬 쉬워졌다. 그리고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파워히터 영입을 위해 선발투수 중 한 명을 트레이드할 생각이 있는 다저스로서는 박찬호가 상당히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 박찬호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발투수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더구나 박찬호는 ‘코리안 커뮤니티’는 물론 ‘코리아’라는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다. 다저스로서는 박찬호를 붙잡는 것이 비즈니스차원에서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물론 박찬호로서도 생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다저스테디엄에 돌아온다면 한인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침체된 커리어를 부활시킬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는 셈이다. 만약 에이전트 교체가 다저스행으로 이어진다면 박찬호의 도박은 성공이었다고 단언해도 된다. 박찬호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궁금하다.
김동우 <스포츠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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