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구명위원회, 한미연합회, 이민사 집필 등을 통해 한평생 한인사회의 정신적 발전에 기여해 온 그레이스·루크 김씨 부부.
역사현장 삶 바탕
한인 이민사 집필
29년 전 오늘(1978년 1월29일) 새크라멘토 유니언의 이경원 기자는 ‘차이나타운의 엘리스’라는 제목의 탐사보도를 내보냈다.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한인 이철수 사건 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한 이 기사는 주류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경원 기자와 친분이 있었던 그레이스 김(당시 고교 교사)·루크 김(당시 의대 교수), 유재건(당시 법대생)씨가 주축이 돼 전국 규모의 ‘이철수 구명위원회’가 조직됐다. 당시 역사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들의 삶은 30년의 세월과 함께 많이 변했다. 학생이었던 유재건씨는 변호사가 된 뒤 한국에 건너가 국회의원이 됐고, 이경원 기자는 1.5세와 2세에게 글과 강연을 통해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다. 그레이스 김씨는 데이비스 고교에서 24년간 교편을 잡았고, 새크라멘토 한인회장과 한미연합회 전국 부이사장으로 등으로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 2월 실비치 실버타운 ‘레저월드’로 이주해 OC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레이스 김(75)·루크 김(76) 부부를 만나 이철수 사건 재조명과 이민사 집필 등 근황을 들었다.
“소수계 등 약자에겐 안보이는 차별 존재
차세대 자긍심 고취 1세들이 격려해줘야”
제2의 고향 북가주 데이비스를 떠날 때는 아쉬움도 컸지만, 자녀와 형제가 살고 있는 기후 좋은 남가주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두 사람. 남편 루크 김 박사가 파킨슨씨병 초기여서 인터뷰는 부인 그레이스 김씨와 진행했다.
구명위원회는 이철수씨를 살리기 위해 20만달러가 넘는 돈을 모았고, 이철수씨가 출감한 뒤에도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결국 마약에 중독돼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최근 재활에 성공한 이씨는 지난해 UC데이비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뒤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다.
그레이스 김씨는 “많은 한인들로부터 ‘왜 하버드에 진학해 한인사회에 기여할 사람이 아닌, 실패한 불량배를 돕는데 그렇게 많은 정성을 쏟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고 말했다.
하버드에 진학할 형편의 학생들은 부모나 주위에서 도움을 많이 주지만,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난 이철수씨에게는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는 것. 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씨는“세상에서 버림받고 인간대우 못 받는 사람을 돕는 게 크리스찬이 마땅히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철수 구명운동 성공 이후 자연스럽게 디트로이트에서 백인 청년에게 맞아 억울하게 숨진 중국계 빈센트 첸과 갱단 살인혐의로 수감된 한인혼혈 샨 이씨 구명운동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직도 소수계 등 약자에 대한 미국의 사법 정의는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 “빈센트 첸의 부모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다행히 좋은 변호사를 만난 샨은 올해 석방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억울한 사람이 많다”며 “눈에 안 보이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곳이 오늘의 미국”이라고 말했다.
굵직한 이슈를 직접 접하면서 부부는 한인사회의 정치력 향상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한미연합회 부이사장을 맡았고, 새크라멘토 한인회장도 역임했다.
최근에는 부부 모두 한인 구술 이민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오랜 친구인 이경원 기자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중인 이 프로젝트는 UCLA에서 출판이 확정되는 등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데이비스에 살던 1970년대 중국과 일본계 이민자들이 선조들의 역사를 잘 보존한데 충격을 받고, 소니아 선우씨와 함께 당시 생존했던 16명의 이민 1세들의 구술 역사를 모아 1982년‘초기이민’1권을 발간한지 25년만에 2권이 나오는 셈. 이번 책에는 초기 이민자 2세와 3세들의 이야기가 실릴 예정.
“영어권 한인을 위한 잡지 코리암에 매 달 한 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1.5세와 2세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 부부는 “다음 세대들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자긍심을 잊지 않도록 격려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게 1세들이 몫”이라고 말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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