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의 박사가 추상화를 감상하는 기본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천규 기자>
일단은 그냥 느끼고 이해하라
요즘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범죄드라마 ‘사이크’(Psych)에는 션이라는 가짜 심령술사가 주인공으로 나와 경찰도 풀지 못하는 범죄 사건들을 척척 해결해 낸다. 그는 언제나 심령술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 척하지만 사실은 심령술이 아니라 고도로 개발된 ‘관찰력’에 의해 범죄 상황을 읽고 추리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초능력에 가까운 그의 관찰력은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훈련시킨 능력으로,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어떤 상황에서든지 짧은 시간에 아주 세밀한 것까지 다 보고 사진처럼 머릿속에 기억하도록 훈련되었다. 이처럼 TV나 영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형사와 탐정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증거품과 주변상황들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타고난 눈썰미도 중요하지만 훈련에 의해 습득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을 잘 감상하려면 이러한 집중된 관찰력이 필요하다. 어디서나 의식적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사진 찍듯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컴퓨터와 책꽂이가 놓여 있다면 그 두 물건을 컴퓨터와 책꽂이로만 인식하기보다 각 물체의 선과 면, 색과 원근을 보고 물건들 사이의 빈 공간까지 주목하여 본다. 마치 데생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물체를 보면 선뿐 아니라 빛의 각도, 그리고 크기에 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눈을 개발하고 개안해야 하는데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본다’는 것은 빛에 의한 생물학적 활동이지만 ‘알아본다’는 것은 생각이라는 뇌의 활동을 통해 의식적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알아보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미술의 기본을 알면 훨씬 쉽게 빨리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번 시간에는 미술 감상을 위한 기본개념들을 공부한다.
‘이해’후엔 작품의 상징성 찾는 해석단계로
선·색·공간 등 기본개념 알고 봐야 도움
“감상자 감정이 중요” 일부선 작품해석 반대
미술은 공간예술인 동시에 시각적인 예술이다. 평면의 도화지 혹은 캔버스에 선(line)과 색(color)을 통해 형태(form)를 그리는 것이다. 한때 미술사에서는 선이 먼저냐 색이 먼저냐를 놓고 두 파가 심각하게 대립했을 만큼 선과 색은 그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선과 색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원근도 표현하고 입체감도 표현한다. 앞에 그린 것이 가깝게 느껴지고 뒤쪽에 그린 것은 멀리 느껴진다. 또렷한 물체는 가깝게 보이고 희미한 물체는 멀어 보인다.
색깔에도 밝은 색과 어두운 색, 따뜻한 색깔과 차가운 색깔이 있고 색의 배합에 따라 강도와 느낌이 달라진다. 서로 대비되는 보색(빨강과 초록, 오렌지와 블루, 노랑과 보라)을 함께 많이 사용하면 그림이 강렬해지고, 반대로 보색을 섞어놓으면 투박해진다. 이처럼 화가들이 색을 선택하는 것은 의도적이고 상징적이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한다.
그림에서는 공간도 매우 중요하다. 두 형체 사이의 빈 공간(negative space), 색과 색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도 숙지한다.
이제 하나의 미술작품을 감상한다고 하자. 감상은 미술작품이라는 매개체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이다. 작품을 만든 사람과 이를 감상하는 사람이다.
화가는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눈과 손과 붓을 사용해 위의 기본요소(선, 색, 공간)들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 그림을 보는 감상자는 자신의 시각과 감정과 지각활동을 사용해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모든 예술은 지각으로 연결돼야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감상의 과정을 조금 세분화하면 이해(Understanding)의 단계와 해석(Explanation)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해는 그림을 그냥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주 감상했던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을 볼 때, 바다와 하늘과 커다란 바위덩어리와 그 위에 성채가 있는 것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의 단계에서는 이 바위덩어리가 왜 하늘에 떠있을까 질문하고 생각하고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리고 작가 마그리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이 그림이 나한테 미치는 의미를 평가한다.
이런 감상의 단계를 도상학(Iconography)과 도상해석학(Iconology)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도상학은 그림을 보고 그 대상을 인지하는 자연스런 단계, 도상해석학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도상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찾아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어떤 그림이든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감상자는 그가 살아온 배경과 문화로 인하여 어떤 가치관이 형성돼 있으며 이것이 감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북에서 내려온 70대 노인이라면 빨간 색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하기보다 빨갱이 혹은 6.25 동란과 피를 연상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가에게도 그 나름의 삶의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속에서 특정 의도나 계기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화가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을 알면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과 관계없이 한 그림을 볼 때 ‘어쩐지’ 좋은 경우가 있다. 마치 ‘노란 샤쓰의 사나이’처럼 이유 없이,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어쩐지 나는 좋은 것이다. 이것은 감정이 시키는 것이다. 그림의 균형이 맞는지, 색깔이 어떤지, 작가 의도가 무엇인지 등의 분석이나 난도질 없이 그저 무작정 좋은 것이다. 이런 경우처럼 예술작품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랑에 빠질 때처럼 에로틱한 감정이 중요한 것이지, 분석하는 일은 작품을 죽이는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그림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감상자의 판단에 따라서만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작가가 옆에서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감상자의 상상의 나래가 거기서 끊기고 묶이므로 감상에 제한이 가해진다는 주장이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어쩐지 좋은 그림을 알아보는 일이나, 나의 상상에만 의존해 그림을 감상하는 일도 모두 기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위에 언급한 기본개념은 일단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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