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댓글 네티즌의 대통령’이다. “그는 큰 귀를 가지지 않고 큰 입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당돌하고 거침없다. 그의 직설들은 누구의 충고도 받지 않는 오기로 보인다. 앞으로의 1년이 지나면 우리는 한동안 적막할 것이다.” 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우리(한국)사회에는 ‘각 영역의 유아독존들이 득실거리고 있다’고 진단하는 고은 시인의 말이다(1/23/07 한겨레뉴스). 어찌 들으면 내일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노 대통령 탓처럼 들린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독불장군이 있다면 저 득실거리는 ‘유아독존’들도 있다. 노 대통령 욕하기가 ‘국민운동’이 되었다는 서울이다.’노짱 욕 못하면 병신’이란다. 심지어 일간지 논설위원까지도 “ 개나 소나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절이 됐다”고 서슴없이 써대는 판이다. 이같은 세상 인심 속에서 고은 시인은 ‘군중의 폭력성’을 본다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는 ‘일종의 타락’이라고 일깨우며 고은 시인은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이루어 온 민주주의의 품위를 지켜 내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은 좋다. 꼭 있어야 한다.
’유아독존’에 취해 무조건 비난하려 들지는 말자. 부정만으로는 분열과 갈등과 대립을 부추길 뿐이다. 함께 내일을 열어 나가겠다면 긍정의 자리에 서야 한다. 긍정의 안경을 써야 한다. 화합의 길, 통합의 길이 보일 것이다.‘노통’의 언행이 아무리 싫고 속 뒤틀리게 한다 해도 어찌 개나 소 뒤를 따를 것인가. 그래 묻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4년은 정말 잃어버린 4년이고 잘못된 4년인가? 취할 것, 지켜 갈 것이 한둘이 아니던데 ‘반노 인사’들의 눈에는 그저 잘못된 꼴로만 보이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나라 살림은 거덜나고 강토는 이미 적화(赤化)된 것처럼….
한미 FTA협상 문제도 그렇다. 노 대통령이 작년 연초에 불쑥 내놓은 문제다. 그래도 친미 보수진영에서는 두 손 들어 환영한다. 반미진보진영에서는 ‘결사반대’한다. 한미 두 정부가 합의한 원칙이 아니고, 다만 시기만 문제가 된 전작권 환수 문제는 또 어떤가. 이번에는 진보진영이 찬성하고, 보수진영=특별히 군 왕별들 =은 결사반대다. 찬반이 있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반대 목소리만 요란하고 찬성쪽은 “노무현이 싫어” 입다물고, 될대로 되라는데 있다. 여론은 ‘반노’이다.
직접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1월 23일에 있었던 ‘참여정부 4년 평가와 21세기 국가발전 전략’ 제하의 특별연설이다. A4용지 61쪽, 4만3000자가 넘는 방대한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민생이라는 말은 저에게 송곳”이라고 고개를 숙인다. 민생이 풀리지 않았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살림은 더욱 어려워지고 어려운 사람들은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이실직고 한다. ‘서민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하며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습니다”며 무릎을 꿇는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반응은 냉랭하다. 일언지하에 ‘보통 연설’이라고 폄하하는 논객까지 본다. 노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파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과장도 너무 지나친 과장”이라며 그 근거를 보여준다. 2002년 1,600억 달러였던 수출이 지난해에는 3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4년 경상수지 흑자 합계가 6백억 달러를 넘고, 외환 보유액도 1,2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4년동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종합주가지수는 600선에서 두 배 이상 높아졌고, 소비자 물가는 3.6%에서 3% 수준으로 안정, 실업률도 3.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현대건설, 하이닉스, LG카드, 대우건설 등 부실기업도 정상화되었다고 그동안의 성과를 말한다.
반응은 또 썰렁하다. 노 대통령이 야당과 언론들이 끊임없이 우리 경제를 위기니 파탄이니 하면서 저주하는 가운데 이룬 성과”라 한 저주라는 낱말이 모든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한번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꽤 근사한 사실도 눈감아 버린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며 수출 3천억 달러를 앞당긴 한국의 주력사업도 소개한다. 세계시장에서 조선 1위, 반도체 3위, 전자 4위, 자동차ㆍ철강은 5위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전임정권이나 야당ㆍ언론을 탓해서 못마땅하다 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열불 날 노릇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은 국민의 정부에서 토대”를 놓았고 “참여정부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이 뿌리를 내려가고”있음을 확실히 한다는 노 대통령은 “이상 더 정경 유착도 없고, 관치경제도 관치금융도 없습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이제 청와대에 대출 청탁을 하는 기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건만, 고은 시인께서 “이전 보다 훨씬 투명해진 것은 놀랍다”고 말한 것말고는 그만이다. 한미 FTA에 대한 소신도 뚜렷했다. 개방은 대세요 막을 수 없다. 진보개혁세력이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의 대세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주류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FTA 문제는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라고 진보개혁세력의 변화를 간곡히 촉구한다. 그러나 이 기세를 살려 주어야 할 한미 FTA협상을 찬성하는 친미 보수세력들은 말이 없다. 노 대통령 말대로 서울에서는 정말 노무현 반대하면 다 정의”란 말인가. 자기들 손으로 뽑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대통령인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돕고, 지켜볼 수는 없는가. ‘노통 탓’인가.
한국의 보수와 진보도 사안별로 때와 장소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찬반이 바뀔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오늘을 가꾼 민주 산업화 세력의 가치가 소중하다면 민주 통일세력의 가치도 소중할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한다면 대화할 수 있고, 토론을 통해 합의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좌우와 중도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라면 우리가 지켜 가야 할 보편적 가치 안에서 풀지 못할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분단 때문에 국가 안보문제가 각을 세우고, 대북정책에서 의견을 서로 달리하고 있지만 한반도를 지켜 갈 원칙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이 밝힌 바와 같이 “대북정책의 핵심은 평화와 안전”이다. 통일은 그 다음이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전쟁을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라는 의견은 정파나 정권을 떠나 지켜 가야 할 것이다. 대권 욕심 때문인지 여기서도 울림이 없다.
이제 와 보면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한 시간안에 그 많은 내용을 밝히겠다는 욕심은 너무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적 과제를 착실히 수행하고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 주겠다면 더더욱 그 같은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민주주의의 품위를 새롭게 하며 이룩한 ‘한미FTA’의 성공적인 결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국민들과 큰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깊이 간직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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