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감사! 행복에의 지름길
지난 약 열흘간, 월드비전 본부가 있는 워싱턴주는 몇십 년만에 찾아 온 한파와 눈 폭풍으로 주 전체가 혹독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눈이 거의 안 오는 지역이라, 갑자기 7인치 넘게 퍼붓는 눈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씨도 영하로 떨어져 도로는 완전히 빙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과감하게 볼일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차들은 만용의 결과를 보여주듯 여기 저기 충돌의 흔적을 온 차체에 남긴 채, 집으로 꽁무니를 빼기 바빴습니다. 모든 TV 뉴스는 이번 한파에 관련된 내용뿐이고, 방영되는 장면은 보기에도 아찔하게 눈이 덮인 도로에서 속수무책으로 충돌하는 차뿐이었습니다.
도로 사정이 이러니 대다수 직장이 임시로 문을 닫았고, 가장 눈이 많이 온 지역에 있던 저희 월드비전도 어쩔 수 없이 며칠동안 문을 닫았습니다.
신난 것은 아이들뿐. 학교는 임시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재킷과 장갑, 부츠로 중무장하고, 옆구리에 썰매나 플래스틱 보드를 하나씩 꿰차고 언덕을 점령합니다. 환호를 지르며 미끄러지는 통에 스키장인지, 일반 도로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둘째 딸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저희도 온 가족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탔습니다.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한바탕 눈에서 뒹굴다 집으로 돌아오니, 도로 쪽으로 쳐진 뒷마당 펜스가 4미터 가량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의아해하며 무너진 펜스 밖을 확인해보았습니다. 펜스 앞까지 길게 미끄러진 자동차 바퀴 자국이 있었고, 후진해 도망간 자국까지 생생하게 있었습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연락처를 남겨 놓은 흔적은 안보이고, 영락없는 뺑소니 소행이었습니다.
여태껏 신났던 기분은 싹 사라지고,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애써 가라앉히느라 ‘×씹은’ 표정으로 서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저를 피해 제 방으로 다 올라가고, 아내만 제 기분을 풀어주느라 커피를 타왔습니다. 아내가 “저녁은 뭘 먹을까” 묻지만, 좀처럼 속상한 기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우리 집 펜스지?’ 밥을 먹으면서도 언짢은 기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에서 TV를 보던 둘째 아이가 “야! 웃긴다, 정말. 아빠, 빨리 와서 이거 좀 보세요”하면서 막 웃습니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TV에는 눈길에 미끄러진 트럭이 어떤 집 차고를 완전히 뚫고 들어가 있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딸은 “저 집은 저거 고치려면 무지 힘들겠다. 우리 집은 아무 것도 아니네”라고 한마디합니다. 차고를 뚫고 들어간 트럭을 보면서 황당해하는 그 집주인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집사람도 웃고, 영문도 모르는 큰 딸 아이까지 따라 웃다보니, 언짢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습니다.
“잘됐네. 당신 신년 기도 제목이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겨우 펜스만 부서졌으니 감사할 일이 하나 생겼네” 하는 집사람의 위로에 한줄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 겨우 펜스만, 그것도 겨우 4미터만 부서졌을 뿐인데. 집이 모두 부서진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가족들이 다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차고가 무너진 저 사람보다는 낫잖아”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불평과 원망에 익숙합니다. 많은 것을 얻어도 감사는커녕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합니다. 작은 손해를 보았을 때에는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양 불평을 토로합니다. 그리고는 삶이 힘들다고 푸념합니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감사란 주어진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감사와 원망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뒤집어 생각하면 모두가 감사할 일 뿐입니다. 그러면 삶이 즐겁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 모든 환경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항상 축복 받은 삶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지난 토요일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펜스 수리를 마쳤습니다. 즐거운 유희와도 같은 가족 노동이었습니다. 비용은 가족 인건비를 제외하고, 홈디포에서 구입한 펜스용 합판, 지지대용 각목, 목재용 이음쇠, 못 등을 합쳐 56달러가 들었을 뿐입니다. 겨우 56달러에 값진 교훈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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