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웰빙을 위한 선진국형 이민, 이를테면 부자들이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로 나가는 이민이 유행하고 있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이민사는 서러운 비극의 역사다. 1900년대 이전 간도나 연해주 해외이주는 이민이라기보다 유민(流民)의 성격을 띠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만주나 러시아, 일본의 이주도 마찬가지다. 미주 땅에 한인들이 생존을 위해 집단적으로 첫 발을 디딘 1903년 미주이민의 실체는 실은 농노(農奴)이민이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살아온 구한말의 한인들에게 하와이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풍부한 과일과 많은 음식과 옷이 나무에 걸려 있어서 따기만 하면 되고, 모든 것이 풍요로워 걱정할 것이 없는 땅, 심지어 미국의 땅은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하와이 농장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했으며, 농장의 노예노동에 시달려야했다.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사탕수수 농장을 떠나 와이하와에 있는 파인애플 농장으로 더 높은 임금을 따라 나서기도 했으며, 하와이의 수도 호놀룰루로 모여들었다. 강인한 생활력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인들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와이에 주둔하게 된 군인들을 상대로 세탁업과 옷 수선, 구두 수선 등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일본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펴나갔다.”
웨인 패터슨 박사가 쓴 ‘하와이 한인이민1세, 그들 삶의 애환과 승리‘라는 책 내용의 일부다. 우리 미주 이민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보면 하와이 이민의 실상을 더 리얼하고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소유한 것은 용기와 맨손뿐이었다. 칼날 같은 사탕수수를 맨손으로 뽑으며 흘린 피의 상처는 그들의 훈장이었다. 뙤약볕과 채찍을 참으며 악전고투했다. 그래서 번 쥐꼬리만한 돈으로 교회세우고 광복 위한 독립자금과 자식교육을 위해 썼다. 104년 전 겨울 이맘때 게일릭(Gaelic)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20여일 항해 끝에 미지의 신천지에 내린 102명의 용감한 개척자들을 기리기 위해 미주 곳곳에서 거행된 미주한인의 날 기념 행사는 그래서 뜻 깊은 것이며, 이 교훈을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고국을 떠나기전 어떤 식으로든지 기독교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상륙하던 그 해 1903년 7월 4일 오아우섬 모쿨레이아 (Mokuleia)에서 이미 한인 노동자들이 첫 예배를 보았다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산 안창호도 이승만 박사도 교회를 중심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사탕수수밭 노역, 세탁소 일, 흑인상대 장사가 힘든 일이긴 하지만 신앙에 뿌리를 둔 우리 미주 이민사는 축복 받은 역사다.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교회와 함께 시작된 우리 이민사는‘디아스포라’(유대인 방랑)의 신화적 의미가 있다고 나는 평소 믿고 있다. 한인의 미주 이주는 창세기 12장 1절, “내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라는 성서적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시카고지역 한인교회협의회가 미주 한인의 날 축하 예배 및 기념대회를 교파를 초월해 이 지역 장자교회인 제일연합감리교회에서 가진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교회연합회는 기념대회에 앞서 선언문을 통해 정부 당국의 미주 한인의 날 제정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인정받은 것이며, 나아가 역사의 발전과 인류의 복리를 개척하여온 으뜸가는 디아스포라 민족으로 공인해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ㅣ
미주 한인의 날 행사가 시카고를 비롯하여 하와이, LA, 뉴욕, 워싱턴 D.C.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13일 다채롭게 펼쳐졌다.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민 100주년 조형물이 세워진 영스트릿의 파아와 공원에서 기념식을 갖고, 이민 선조들의 신천지에서의 땀과 눈물, 그리고 그들의 넋을 기렸다. LA서는 청소년 세미나로 시작, 주류사회와 한인사회가 하나되어 공동으로 기념식을 가졌으며, 본보 주최로 한미 어린이들의 친선동요 음악제도 선보였는데, 색동옷이 무척 돋보였다. 수도 워싱턴 D.C.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는 기념 한복 패션쇼가 열렸다. 시카고에서는 오랜만에 시청 앞 데일리센터 광장에 초대형 태극기가 게양되고, 스코키, 노스브룩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포럼, 전시회, 연주회. 전통음식소개, 패션쇼 등 근래에 보기 드문 풍성한 행사가 이어졌다. 금년 행사를 계기로, 해마다 더 알찬 행사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우리의 자긍심을 키우고, 타민족과 교류를 통해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임을 다짐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동포사회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바다 건너 한국사회의 무관심이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본국지에서는 한 줄도 기사를 취급하지 않았다. 모두가 ‘정치’와 ‘부동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인가? 해외동포는 남북한 인구 통 털어 10%, 말끝마다 ‘민족의 자산’이라면서 너무 외면하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마침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의 김영진 대표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1월 13일을 ‘해외 한인의 날’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니 미주에서도 적극적인 동참이 따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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