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대통령’ 포드
박정희 독재의 칼날이 최악의 유신(維新)으로 서슬 시퍼렇게 치달릴 때, 미국은 워터게이트(Watergate)의 악몽으로 시달렸다. 그 즈음 미국에 이민을 온 나는 미시간 디트로이트에서 혼자 몇 개월을 지냈다. 73년 애그뉴 부통령(부정부패 혐의로 물러남)의 후임으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임명된 제럴드 포드의원은, 다음해 하원 법사위가 닉슨을 탄핵하자, 자진 사퇴한 그의 뒤를 이어, 미국 제3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세상은, 선거를 거치지 않고 유일하게 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된 그를 가리켜 ‘불의(不意)의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미시간주 그의 고향 그랜드 래피즈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살던 디트로이트를 비롯하여 모든 주민들이 이 뉴스를 접하자 ‘미시간의 아들’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고 기뻐했으며, 미디어들이 이를 대서 특필했던 기억이 새롭다.
포드의 원래 출생지는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라는 아주 예쁜 도시이다. 본명은 레슬리 킹(Leslie L.King)인데, 그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어머니를 따라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로 이사를 했으며, 어머니와 재혼한 의부 제럴드 R 포드의 성과 이름을 물려받았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원만했던 포드는 보이스카웃 활동에 열심이었고, 앤아버 미시간 대학을 다닐 때는 유명한 풋볼선수로 포지션은 센터와 라인 백을 맡아 1932-33년에는 전국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는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과 대학교 때 풋볼 선수 경험을 평생 긍지로 여기며 살았다. 그의 장점인 부지런함과 원만함, 정직과 신사도는 그때 키운 덕목이다. 졸업 후 그린베이 패커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으나, 당시 프로 풋볼 선수들의 연봉이 지금과 달리 너무 적어 거절하고 예일 법대로 진학한다. 그의 운명은 여기서 갈라진다. 포드가 만약 운동선수의 길을 택했다면 미국의 38대 대통령은 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법대 졸업 후 포드는 해군에 입대한다. 제대 후 고향 그랜드 래피즈에서 하원으로 출마, 내리 13선 의원이 되었고, 하원원내 총무(공화당)로 활동 중 뜻밖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져, 행정부 수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워터게이트 악몽 해결
워싱턴 포스트의 민완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집요한 취재가 없었다면, 한 낱 하찮은 잡범(雜犯)의 출현으로 그칠 수 있었던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건물 민주당 당사 도청사건은, 백악관 참모들의 ‘거짓 증언’과 닉슨 자신의 ‘은폐’ 때문에 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발전, 종국에는 현직 대통령 닉슨의 하야라는 엄청난 파고를 몰고 온 사건이다. 이 격동의 시기, 해결사로 포드가 등장한 것이다. 의회서 잔뼈가 굵은 포드는 평소 국회의장이 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욕심이었다. 그런데 자고 나니 어느 날 갑자기 졸지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포드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닉슨을 사면했다. 미국을 상대로 저지른 닉슨의 잘못을 용서하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모든 형사소추를 면책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적 결단은 포드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한 조치라느니, 분명 무슨 ‘딜’이 있었을 것이라느니, 반대 여론이 빗발쳤다. 언론으로부터 ‘BOZO(얼간이 촌놈)이라고 비아냥을 받았다. “’제럴드’가 아니라 ‘제일(Jail)’이다.” 포드를 감옥으로 보내자는 데모가 연일 시끄러웠다. ‘닉슨 사면’은 포드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닉슨의 잔여 임기 895일을 마치고, 76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와 맞붙은 포드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재임 중 소련과의 냉전 완화, 헬싱키 인권협정, 캄보디아 무력시위 제압, 월남전 종식 등 그의 업적은 돋보이지 못하고 가리워 졌다. 임기가 끝난 후의 평가도 후버(31대 대통령)급 3류 대통령으로 취급받았다. 루즈벨트처럼 카리스마도 없었고, 아이젠하워처럼 영웅도 아니다. 케네디나 트루만 같은 이미지도 없었다. 카터 대통령처럼 그저 평범한 미디오커(Mediocre)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포드와 카터는 대통령 이후의 행적이 더 평가를 받았다.
시민 대통령 역사적 평가
인간은 관 뚜껑을 덮을 때 진 면목이 나타난다. 93세로 영면(永眠)한 포드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 달 26일부터 8일 간 국장(國葬)에 부쳐졌던 포드는 역사의 인물로 거듭 태어났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벌어진 국민과 백악관과의 관계를 복원시켰으며, 전쟁과 스캔들로 상처 입은 혼란의 시기에 정직과 성실함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언론인 탐 브로커는 조사에서 “밀실 정치를 불식시켰고, 공개와 솔직한 정치를 실현했다. 그는 대통령이 될 때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알았고, 떠날 때도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알았던 시민이다.”고 말했다. 제니퍼 그랜홈 미시간 주지사는 “미 중서부인의 가치는 근면, 스포츠맨 십, 성실, 정직이다. 포드는 자랑스러운 우리 고향사람이다.”라고 포드의 인품을 추모했다. 포드 대통령의 장례식은 장엄했다
미국은 참으로 위대한 나라다.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나라이고, 그 위대한 인물에 감사 할 줄 아는 국민을 가진 나라다. 본 받았으면 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내 조국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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