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가족치유상담가)
우리들의 대화 (1)
얼마 전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과는 처음 보는 사이인지라 서로 간단하게 소개하며 인사하는 시간을 갖었었다.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는 필자의 말에 한 남자분이 관심을 보이며, 대뜸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뭐냐고 묻자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문제가 계속 쌓여 고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기조차 힘들다고 설명한다. 서로 자주 오해하고 상대방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화내고 하면서 점차 화가 나는 쪽이 주로 대화를 끝내는 식으로 되어가고 있다면서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대화와 관계.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대화이고, 대화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누군가가 이야기할 때 건성으로 들으면서 자신이 다음에 해야 할 혹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또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나 자신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 이야기가 상기시키는 기억 등을 떠올리며 화를 내거나 대화의 흐름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사이일수록 생략하는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 해 놨어?” (생략된 말: 어제 화장실 문 좀 고쳐달라고 한 부탁)
“뭐?”
“어제 한 부탁!” (생략된 말: 그럴 줄 알았어. 도대체 내 말을 귀담아듣질 않아.)
“무슨 부탁?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할 수 없어?”
“관둬. 항상 그렇지 뭐.” (생략된 말: 내가 하는 부탁, 내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릴 때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 알아?)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겠지만 이러한 대화방식이 전혀 생소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몇마디만 하면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차려야 한다는 기대를 버리고,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난 괜찮아”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괜찮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차린다. 슬프거나 화가 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웃는다면, 그것 또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항상 그럴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 얼굴표정, 시선, 그리고 몸짓을 통하여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일치된 대화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부관계나 그외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에 상처를 받고 화를 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상처받고 화를 내고는 한다. 가령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 명령받고 있는 듯한 상황, 날 버리고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 등등.
“오늘 저녁에 뭐 할까?” (생략: 오늘은 너랑 즐거운 시간 가지고 싶어)
“넌 뭐하고 싶은데?” (생략: 오늘은 그냥 집에서 조용히 있고 싶어)
“우리 영화보러 가자”
“그래, 그럼” (별로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둘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혹은 영화를 보고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마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주로 어떤 생각과 감정을 생략하고 요약된 말만을 전달하거나, 또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생각에도 없는 말을 한 후 속상해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해하기도 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처받고, 때론 상대방이 상처받을까봐 내가 원하는 말을 못할 때도 있다. 일부러 상처주려고 말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듣기 좋은 말이든 듣기 안좋은 말이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본인의 정신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위의 대화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오늘은 너랑 즐거운 시간 가지고 싶은데, 저녁에 뭘 하면 좋을까?”
“나두 그러고는 싶은데, 밖에 나가고 싶진 않아. 집에서 뭐 할 수 있는 거 없을까?”
“우리 그럼 영화 빌려다가 집에서 보면 되겠다”
“좋은 아이디어! 피자도 시키고”
대화는 그 방법에 따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살찌우기도 하고 해를 입히기도 할 만큼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기운이 날 수도 있고 불쾌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음 주엔 건강한 대화방법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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