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전쟁 중 유명한 전투 하나를 들어 보세요”“아메리칸 원주민의 주요 부족 이름을 말해보세요”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미국 시민이 될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대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시민일 것입니다.
까다롭게 어려워지는 시민권 시험을 겨냥한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의 이 사설은 시험에 통과하면 시민권 뿐 아니라 평균 미국인보다 미국의 역사와 헌법에 더 정통하다는 인정까지 받게 될 것이라고 슬쩍 비아냥댔다.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것을 모든 게 낯선 새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텃세를 꼬집은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이민에 대해 두 얼굴을 가져왔다. 한편으론 환영하고 포용하면서 한편으론 거부하며 제한을 가해왔다. 지난 중간선거 결과도 이 같은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불법이민 문제로 가장 골치를 앓는 애리조나가 그랬다. 불체자를 형사처벌 하자는 강경 반이민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낙선시키면서도 불체자에게 공립교육을 거부하고 법적 소송권을 제한하는 주민발의안은 통과시켰다.
불법 입국을 막는 국경경비 강화에는 80%이상이 찬성하면서도 불체자에게 신분 합법화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의견 역시 60%에 달하고 있다. 결국 미국 여론의 현주소는 ‘단속은 해야한다, 그러나 비인도적인 처사는 곤란하다’ 정도에 엉거주춤 머물러있는 듯 보인다. 여론이 이처럼 머뭇거리니 그 여론에 생명줄을 맡기고 있는 정치가들에게 이민이 피하고 싶은 이슈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오늘 개원하는 민주당 주도의 새 연방의회 우선과제에도 이민개혁안은 공식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친이민 개혁법안의 입지가 선거전보다 훨씬 강화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가혹한 반이민법안의 산실이었던 하원을 민주당이 확실하게 장악했고 포괄적 개혁안의 기수인 에드워드 케네디의원이 상원 이민소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해부터 포괄적 개혁안 서명을 천명해 왔고 거기에 더해 쿠바태생의 중도성향을 가진 멜 마르티네즈 상원의원이 새 공화당 전국위원장으로 내정되었으니 정치적 기류변화는 확실히 희망적이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민이라는 이슈 자체가 너무 민감하고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왔다갔다 하니 의원들도 선명한 입장 표명을 꺼린다.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에 찬성을 주저하는 의원들은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여럿 있다. 그건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자칫 2년후 의회 장악권을 공화당에 되 넘겨줄 빌미가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 예측하기 힘든 이라크 상황과 원내 윤리규정등 의회의 발목을 잡을 안건들이 벽두부터 줄지어 선 상황이다. 더구나 2007년 후반에 들어서면 정국은 2008년 대선 분위기가 완연해 질 것이다. 자칫 ‘골치 아픈’ 이민법안은 뒤로, 뒤로 밀리기 쉽다는 뜻이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늦어도 상반기엔 이민개혁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새해의 이민개혁안은 여론의 바람을 덜 타는 상원에서 이미 초안 작성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용은 상당히 친이민적이다. 1천만명 이상의 불체자는 ‘사면’해주고 700마일 장벽설치를 위한 예산은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 1월중 상정하여 4월까진 통과시킨후 하원에 보낼 예정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만 된다면 새해엔 그늘에서 숨죽여온, 10만의 한인을 포함한 불체자들이 어깨를 펴고 햇빛 속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통과’와 ‘효과’는 다르다. 개혁안의 통과가 곧 효과적인 이민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뜻이다. 86년과 96년의 이민법안들도 무사히 통과는 했지만 효과적 해결엔 결과적으로 별 도움이 못되었다. 시행이 힘들어서다. 찬반 양쪽 다 비위 거슬리지 않으려고 개혁법 원안에 수정을 가해 내용을 물타기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파워로 시작되는 새 의회의 새 이민개혁안은 뭔가 좀 달라야 한다. 상반기에 통과시키도록 서둘러야 하는 동시에 비현실적 반대를 과감하게 물리치고 시행이 확실한, 탄탄한 내용을 고수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법안이 된다. 지난 두차례의 개혁안처럼 제스처에 그치지 않으려면 법안 시행을 위한 원활한 시스팀과 재원도 함께 확보해 두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하는 어려움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는 매 10년마다 경험해온 이민법 개혁의 실패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rokpark@koreatimes.com
<박 록> 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