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캄마구트를 지나며
김 희봉(수필가)
K형, 여행은 호수에 핀 추억입니다. 알프스의 산록과 푸른 초원사이로 보이는 쪽빛 호숫가에 새긴 그리움입니다. 그 호수 위를 바람 타고 솟구치는 내 영혼의 연(鳶)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환영(幻影)을 따라 운터스베르그 산정을 사슴처럼 뛰어오르는 내 젊은 날의 반추입니다.
K형, 잘츠부르크를 떠난 지 1시간 남짓, 그림 엽서 속으로 들어갑니다. 잘츠캄마구트라고 불리는 이곳은 70여 개나 되는 청정호수들이 높은 알프스의 연봉들에 둘러싸인 오스트리아 최고의 절경입니다. 초입(初入)의 푸슐 호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으로 나왔던 이 호수 뒤 원시림은 아예 물 속에 풍덩 몸을 담근 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산마을의 멋은 사르비아의 터질 듯한 붉음에서 더욱 빛납니다. 운치 있게 잘 정돈된 농가들의 발코니마다 붉디붉은 사르비아 꽃들이 멋지게 드리워져 있지요. 자연과 사람이 빚은 하모니가 눈부십니다. 이 조화는 몇 세대 동안 손톱이 빠지도록 경관을 가꿔온 선대들의 피땀어린 열매라고 합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잘츠부르크와 잘츠캄마구트의 지명 속의 잘츠는 소금(salt)이란 뜻이지요. 이 지역은 빙하의 침식으로 암염광이 노출돼 옛날 귀금속만큼 귀했던 소금광산의 중심지랍니다. 이 지역의 꽃인 할슈타트(Hal1statt) 마을은 BC 800년부터 시작된 철기시대의 발상지라지요. 지명의 첫 자인 할(Hall)이 처음 정착했던 켈트족의 언어로 소금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고(寶庫)였다고 하지요.
고자우 호수로 들어갑니다. 해발 2300미터나 되는 웅장한 고봉엔 태곳적부터 있었던 하얀 빙하가 햇빛에 반짝입니다. 꽤 큰 수력발전소를 세워 마을에 불을 밝히고, 호수 주변을 물의 교육장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물의 특성을 설명한 상징물들을 들여다봅니다.
돌 팻말에 ρ= 999.97 kg/㎥ at 4。C라고 새겨져있습니다. 섭씨 4도에서 물의 비중이 가장 크다는 뜻이지요. 잘 알려진 대로 이는 너무나 중요한 물의 특성입니다. 0도 때의 얼음보다 비중이 큽니다. 그래서 얼음이 물위에 뜨지요. 이 속성 때문에 물이 표면부터 얼고, 그 아래 물 속에선 물고기들이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보통 물질들은 고체상태에서 밀도가 더 큰데, 물만은 다르니 그 섭리가 참 오묘하지요.
C = 4.187 J/g K라는 등식도 돌에 새겨 놓았습니다. 이는 물의 열 보존력이 다른 액체보다 2-3배 더 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은 온도차이에 비교적 천천히 반응하지요. 참 소중한 물의 특성입니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대기의 온도가 웬만큼 변해도 바닷물의 엄청난 열 보존능력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K형, 잘 아시다시피 이 중요한 물의 속성이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극심한 지구온난화로 물의 열량 보존력이 감당 못할 만큼 지구온도가 높아지고 있지요. 우리 눈앞에 있는 고자우의 빙하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망원경으로 보니 매년 사오십 미터씩 후진해 간 흔적이 보입니다. 지난 백년간, 반 이상 녹은 셈이지요. 금세기 안에 알프스의 모든 빙하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할슈타트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천국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매달린 고딕 성당, 첨탑이 아름다운 루터란 교회당, 그리고 진홍빛 사르비아로 단장한 꽃동네가 물안개 위에 떠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태곳적 마을임에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멋진 세계적 문화유산지로 가꿔놓았습니다. 옛 문화와 새 문명의 연결을 위해 끊임없이 변모해 왔기 때문이겠지요.
허나 사람은 변해도 물은 변치 말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고백컨대 저의 이 소망이 더욱 간절한 이유는 호수에 새긴 우리들의 추억과, 산 마을에 심은 사연이 또 다른 천년이 흐른 후에도 변함없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어느 시인인가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립다라고 했는데, 할슈타트의 정경(情景)은 보고 있어도 또 보고픈 아쉬움에 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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