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2세 ‘2인 3각’
이민 1세대가 고령화되면서 한인 커뮤니티의 전통적 중심이 바뀌고 있다. 또 팽창한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사회에서의 질적 도약을 모색하면서 리더십의 교체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2세들의 역할이 커지는 이 변환의 시대에 한인사회로 향하는 그들의 발길은 한적하다. 사정이 이러니 20년 후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해체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가. 세대간 대화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전환점에서 본지는 1-2세간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한인사회에서 오래 활동해온 세 사람이 만나 세대간 소통의 문제와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참석자
문흥택 : 전 워싱턴한인연합회장, 현 한미교육재단 이사장. / 박상근 : Moon, Park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한인권익옹호위원장 역임.
김지혜 : McKenzie & Kim. PLC 변호사, 1.5-2세 단체인 한미연합회-워싱턴 회장 대행.
▶사회: 1세들이 보는 2세, 반대로 2세가 보는 1세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김지혜: 부모님 세대들의 근면성, 열정, 자식들에 대한 헌신을 존중합니다. 사실 KAC 활동 전에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어요. 영어 못하고 권위적이고 윗사람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고…. 그래서 부모님 외에는 한국 분들을 접촉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젠 부모님들이나 한인사회 리더들이 가르쳐줘야 합니다. 부모세대들을 바로 보고 그 사고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박상근: 1세들은 2세에 권위의식을 갖고 있고 반면 2세들은 1세들의 교육정도나 언어장벽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희들 어른에 인사 안 해?” “당신들이 돈만 벌었지 뭘 안다고 그래?” 이런 식입니다. 1세들은 또 2세들이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존재로 인식하고 2세들은 1세 지도자들이 자기네들끼리 놀고 한국이나 기웃거리며 이익을 보려는 해바라기 성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문흥택: 우리 세대는 일을 할 적에 인맥이나 학벌, 지연 등 연고를 중요시하고 회의를 해도 토론하기보다 뒤에서 처리하길 좋아하며 뒷말이 많은 편 아닙니까. 그런데 2세들은 절차를 중요시하고 회의를 해도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어떤 결정이 나면 군말 없이 따릅니다. 또 컴퓨터 등 하이테크를 잘 활용해 능률적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현재가 부모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룬 성취라는 점을 때론 망각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사회: 이민사회 속에서의 1-2세는 성장한 역사, 문화적 배경이 달라 서로 이해가 안 되는 점도 많지 않습니까.
문: 많은 2세들이 미국문화에 우월적 가치를 두고 한국식 사고방식, 문화는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국 1세들의 잘못입니다. 워싱턴 통합한인학교를 운영하다 보면 어린 2세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걸 봅니다. 2세들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긍지를 심어주고 한국 문화를 이해시켜야 합니다.
김: 1세들은 합리적 과정 대신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의사나 결정에 순종적으로 따라주길 원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인회장 선거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노인 아파트에 계신 분들에 저녁 대접하면서 표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놓고 당선되면 돈 없어 일 못한다 하고… 그러니 2세들은 한인회를 수상하게 보고 봉사하기 싫다고 그럽니다. 또 한인 전화번호부를 보면 무슨 단체가 그리 많은지 이해가 잘 안갑니다. 대부분 1세들이 자기들의 명예를 위해 만든 단체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단체에서 할 일이 뭔가 하고 자문해보지만 없습니다.
▶사회: 1-2세가 손을 잡고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박: 96년 클린턴 대통령 당시 웰페어 개혁법안 때문에 두 세대가 한인권익옹호위원회를 조직,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1세가 재정을 담당하고 2세들은 영주권자에 웰페어 수혜를 박탈하는데 대한 법안을 연구하고 상하원의원들을 면담, 입장을 대변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해 잘 이뤄졌습니다. 8월에는 의회에서 데모도 함께 하는 등 역할 분담을 잘하고 신뢰가 생기니 서로 사고와 문화적 배경이 달라도 일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공동 프로젝트에 2세들의 역할이 분명 있으며 끌어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2세들을 존중하지 않고 1세들 마음대로 하면서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대하면 2세들은 가고 맙니다.
김: 전 어려서 미국에 왔는데 우선 한국말이 불편하니 한인단체 활동에 장애가 있습니다. 말이 서툴러 표현을 잘 못하니 어른들은 버릇없다고들 그러시고…. 서로 불편하고 거리감이 생기니 나오지 않게 되는 겁니다.
문: 1세들이 가진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고방식, 언어 장벽이야말로 세대 단절의 주요인이라 지적할 수 있을 겁니다. 부모와 자식세대라는 연령적 차이를 넘어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소통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만나 대화하고 상호 관심사를 살피고 협력의 장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연륜과 경험, 재정적인 토대를 갖춘 1세와 미국화된 2세들의 에너지가 결합력을 높일 때는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사회: 1-2세들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조화롭게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박: 가령 한인커뮤니티센터를 짓는다고 하는데 들여다보면 2세들의 인풋(In Put)은 전혀 없습니다. 2세들을 위한 사업이고 결국 2세들과 협력해야 할 텐데 1세들만 하고 있는 겁니다. 범 동포적으로 한다면 그런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권 신청 사업의 경우 2세 모임인 KAC에서 시작해 LOKA(시민연맹)등 다른 단체로 확산됐는데 한인회 간부들이 격려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2세들이 하는 사업에 1세들이 자원봉사도 하고 격려하는 게 필요합니다. 따로 놀게 되면 응집력이 분산되고 결국 한인사회 힘의 약화를 초래합니다.
문: 회의 진행을 한국어나 영어로 할 것인 지에서부터 일의 우선순위 결정, 재정 조달방법 등 일을 하다보면 연령과 경험이 다른 두 세대가 의견충돌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니 일의 절차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만들어내야 하며 우리에게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설정해야 합니다. 1세와 2세 공히 마음을 합해 달려들 수 있는 테마를 정해야 서로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김: KAC도 앞으로 한인 단체들과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영어가 필요할 때나 미국인들과 면담하거나 회의에 참석할 때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박: 이벤트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야 합니다. 누군가 만남의 물꼬를 터트려야 합니다. KAC나 LOKA, 한인회등 1, 2세 단체들이 만남의 자리를 만들면 공동의 관심사, 주제가 나옵니다. 그렇다고 누가, 어느 단체가 주도권을 갖는 방식이 아닌 동등한 자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문: 글로벌의 조류가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2세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국과 상시 연결되고 한국과 잦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는 미국내 1세와 2세는 공존의 협력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해는 어디서 나옵니까. 아는데서 비롯됩니다. 1세들은 2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또 2세들에 한글과 한국의 기본적인 역사, 문화를 가르쳐야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민족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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