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
명수는 드디어 그동안 미루어온 자기 방 청소를 끝냈다. 엄마, 내 방 청소 다 했어. 그러자 참 일찍도 했다, 그럼 이제 거실 좀 치워라하는 엄마의 대답. 명수는 또 다시 다른 방 청소를 하라는 엄마의 말에 짜증이 난다. 겨우 저녁에 형 오면 할께요라고 말한 뒤,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주말이긴 하지만 숙제를 해 놓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이다. 약 2 시간에 거쳐 숙제를 끝내 놓고 아래층에 내려오니,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고 계신다.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잠시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부르신다. 부엌에 들어가자마자 명수는 숙제를 다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엄마는 계속 반찬을 만드시며 거실은 다 치웠니?라고 물으신다. 저녁 먹고 나중에 할거예요. 넌 뭐든지 그때그때 안하고 항상 나중에 한다고 그러더라. 알았어, 그럼.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칭찬에 인색하시다. 명수의 엄마는 칭찬할 기회를 번번히 놓치고 만다. 어쩌면 아내와 엄마로서 매일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이의 말에 세심하게 귀기울일 여유조차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야단칠 이유를 찾다보면 마음에 안드는 행동이 보이게 마련이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자신감도 더 생기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며,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차차 다른 사람들이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지니게 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더욱 칭찬을 필요로 한다. 새롭게 친구를 사귀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공부하고, 새로운 모험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며, 이 자신감은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가 심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칭찬 역시 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는 직접 잘했다거나 네가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얘기를 일절 삼가는 부모가 다른 사람들에겐 아이를 칭찬하는 일 말이다. 대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부모에게 왜 그랬는지를 물어봤더니, 아이가 거들먹거리지 않고 겸손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배우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자신감을 잃게 되는 순간들은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된다. 겸손하고 잘난척하지 않는 것은 분명 미덕이지만, 자신의 장점을 알고 스스로의 능력에 믿음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생활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겠다.
얼마전 딸아이와 “탐험가 도라” 라는 비디오를 보면서 저 아이는 참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더 할 수 없이 좋은 본보기가 되는 주인공 도라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동물과 사람들을 구해주고, 어떠한 문제이든 긍정적이고 용감하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그때그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줄 아는 능력이라 하겠다. 노래하고 춤추며 씩씩하게 장애물을 하나씩 뛰어넘는 이 어린 소녀의 미소와 용기는 지켜보는 사람들을 전염시키고도 남을 힘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이렇듯 호기심과 자신감, 그리고 지혜로 사물을 탐험해 나가는 도라의 안정된 모습 뒤엔 부모의 사랑과 격려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자녀뿐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직원 등, 그들에게 좋은 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말, 그리고 칭찬을 적절하게 잘 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의 특정한 말, 태도,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칭찬을 할 때 듣는 사람에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정황인지 상관없이 그냥 “우리 아들은 너무 착해” 라고 한다면, 무엇을 칭찬하는지 알기가 힘들므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기 쉽다. 대신 “겨울방학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미리 숙제하고, 우리 명수는 자기가 할 일을 척척 알아서 잘하네” 라고 한다면, 명수는 내심 기분이 좋아지고 책임감있는 모습을 자신의 이미지 속에 담게 될 것이다.
근래에 한 직장동료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가족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일정기간동안 3개월마다 만나서 인터뷰하는 일이 그녀의 주된 임무인데, 그녀의 역할은 정부의 자금을 계속 받기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 한동안 반복되는 인터뷰 일이 지루하다고 불평해 왔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새로운 다짐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신선하고 보기가 좋아 그녀의 달라진 태도에 대하여 물어봤더니, 그녀의 대답. 얼마전부터 자신의 프로그램을 감독하고 있는 카운티 매니저가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그녀가 여러 명을, 특히 연락이 끊어진 학생들을 노력끝에 찾아 인터뷰를 완료하게 되면, 그때마다 즉시 “Great job!” “Keep up the good work!” 등의 메시지가 적힌 이메일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일을 잘하고 수고한다고 스타벅스 커피 선물권을 받기도 했다고. 그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맙고 흐믓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야단과 비판보다도 어쩌면 누군가의 작은 칭찬 하나와 격려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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