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6개월여 만에 집에 돌아 왔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샌프란시스코 베이는 바람에 날리는 그린 색깔의 실크 머플러가 푸른 바다에 휘감겨 있는 자태의 여인 닮은 듯 푸근하고 안락하게 보였다. 지난 6개월 동안 시민기자로서 나름대로 재외동포의 시각에 비쳐진 한국사회의 뜨거운 뉴스 현장을 보려고 노력했다.
필자의 변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모험은 그런대로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결과는 독자의 판단에 남기고 싶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아쉬움이 크지만 특히 동포 관련 법안 입법이 하나도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중 ‘혼혈인 차별 금지법’은 그런대로 기대를 했던 법안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하인즈 워드의 열풍이 한국에서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2006년 재외동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를 필자에게 꼽으라면 우선 하인즈 워드를 뽑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인즈는 재외 국제결혼 동포들이 그 동안 염원했던 ‘혼혈인 차별 금지법’ 제정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에 접근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혼혈인 차별 금지법’이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제는 우리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법이 아니다. 재외국민 즉 우리들의 자녀 중 외국인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한국의 국적법에서 보면 혼혈인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경우 그들에 대한 법적 차별을 금지 시키자는 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물론 한국내 농촌 총각들이 동남아 여인들과 결혼하여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포함된다.
‘혼혈인 차별 금지법’ 제정은 이미 한미 여성 총연합회(회장 실비아 패튼)에서 한국 정부 관계기관과 국회의원을 상대로 강력히 로비를 했던 사안이었고, 미국을 방문했던 한국 국회의원들 대부분 이 법안 제정의 필요성은 물론 제출까지 약속했던 터여서 올해는 더욱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난 10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제2차 국제결혼 여성 세계대회는 세계 15개국에서 1백20여명의 회원이 자비로 참석하여 많은 기대와 희망 속에 개최됐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패튼 회장은 “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작년과 다르게 무거웠다. 풋볼 스타 하인즈 워드가 다녀가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여당과 야당이 한 목소리로 혼혈인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서더니 조용하기만 하다”며 “호들갑을 떨던 언론도, 정부도, 국회의원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고 말했다. 대단히 실망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지난해 제1회 때 여성부 장관 오찬이 있었기에 올해에도 기대를 했는데 청와대 영부인 오찬으로 대신한다는 협회 준비위원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행사 10일전 이유 없이 취소된 것이다. 청원할 기회를 잃은 참석자들의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친정 집에 찾아온 딸들이 차갑게 냉대를 당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인즈처럼 영웅이 되어 돌아와야만 “어서 오라”고 버선 발로 뛰어 나오는 것일까? 하인즈 방문 이후 정부 여당은 출입국 및 국적법을 개정하는 등 “혼혈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 갔다”고 했고, 법무부는 “한국인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외국인에게 국적과 영주권을 주도록 올해 안에 법을 고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혼혈인의 법적 지위를 높이고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로 했고 혼혈 아동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복지혜택을 증진하는 방안을 연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모두 하인즈가 한국을 다녀간 후 한국정부가 발표한 것들이다.
그 당시 들떠있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정부 관계자들의 반짝 관심이고 말뿐인 정책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명백한 직무유기였고, 아직도 무관심한 재외동포들의 닫혀진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튼 회장은 “국제결혼 여성도 한국의 딸입니다. 이들이 낳은 자식도 엄연히 한국인이지요. 이들이 모국에서조차 멸시를 받고 차별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유태인들은 엄마가 유태인이면 자식도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이제 시대도 많이 변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한국인에게 박혀 있는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프로 축구선수 하인즈 워드가 혼혈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일부 해소하는데 기여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실제 혼혈인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합니다.
혼혈인 차별이 우리들의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해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중요한 법입니다”
한국에서 혼혈인들은 아기들이 태어나면서 ‘어천아배, 어천아배’하면서 운다고 농담조로 얘기하곤 한다. (어)머니 나라에서는 나를 (천)대하고, (아)버지 나라에서는 나를 (배)척하네 라는 뜻이다. 이 단어에는 가슴속 응어리를 안고 살아 가는 혼혈인들의 한이 서려 있다.
국제결혼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없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세계가 글로벌 사회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혼혈인 차별 금지법’을 가능한 빨리 제정하여 인종 차별국가의 악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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