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한해를 돌아본다면, 그 어느 해 보다 극적(劇的)인 한해였다. 만 1년 전 이맘때 대장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했다. 금년 7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자 말자 7월부터 신문사로 돌아와 예전처럼 칼럼을 쓰고 취재를 하면서 지낸다. 물론 암 전문의사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컨설팅과 검사를 받고 있다.
‘극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올해 내 삶은 한편의 드라마다. 수많은 캐스트가 동원되었으며, ‘제작비’도 엄청나게 들었다. 병원과 의사 선택, 병간호 등 감독과 연출은 우리 집 사람이 맡았고, 많은 조연들이 등장한다. ‘용감한 병사’ 역의 주연은 물론 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조기 발견이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다. 조기 발견이기는 하지만 이미 임파선에까지 튀었기 때문에 나에게 내려진 진단(Diagnosis)은 ‘대장암 3기’로 판정이 났다. 대장암의 경우 1,2기 때는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해 완치가 가능하며, 5년 생존율이 70-90%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3기의 5년 생존율은 40%로 뚝 떨어진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인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0%밖에 안 된다. 이 수치에서 보듯이 조기 발견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만약 내가 일찍 내시경 검사(Colonoscopy)를 했더라면 미리 예방 할 수 있었던 병이 바로 대장암이다. 검사에서 비록 용종(polyp)이 발견되었더라도, 즉시 떼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용종은 장 속의 혹인데, 암으로 발전 될 확률은 반반이며, 기간도 10-15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다.
불행 중 다행인 이유가 또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메디케어 수혜자로 보충보험은 블루크로스 블루쉴드를 들었기 때문에 노스부룩의 집 한 채 값 만한 치료비를 감당 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암, 빨리 알면 병도 아니다”라느니, “대장암은 암도 아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C대학 의대교수 B박사는 “힘든 수술인데, 걱정이 많겠다. 좋은 의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은퇴한 외과의사인 K씨는 “큰 수술이다. 참 안됐다.”고 만만치 않을 것임을 경고해주었고, 한국에서 뇌수술의 권위자인 H박사도 “얕 잡아 보지 말아라. 조심해야한다”라고 겁을 주었다.
환자가 아무리 담담하더라도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와 같은 심정의 환자는 긴장하게 마련이다. 이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분들이 있으니, 바로 목사 분들이다. 평소 존경하는 감리교의 C목사, 또 장로교의 L목사는 성경의 이사야 43장,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를 묵상하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은퇴하신 K목사는 위로 카드에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를 적어 보냈다. “주여, 당신은 대대손손 우리의 피난처---, 당신 앞에서는 천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있는 밤과 같아 오니/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 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 옵니다.” 그렇다. 시편의 말처럼 인간은 풀 한 포기와 같은 하찮은 존재이다. 이른 아침 수술실의 환자는 왜 그리 많은지? 펄펄 날던 몸이 수술대 위에 얹어 지면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처량해 진다. 환자는 용기와 믿음으로 이 위기를 극복 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은 고칠 수 없는 병을 주지 않는다.”라고 믿어야한다. 그리고 ‘인명은 재천’ 이라는 점도.
나는 암 투병의 가장 용감한 ‘장군’을 손꼽으라면 연극배우 이주실씨의 ‘무용담’이 떠오른다. 93년 말기 유방암 환자로 진단을 받은 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연극에 사랑을 싣고, 무대에서 죽겠다던 그녀는 98년 가을 시카고에서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을 열연했다. 당시 두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에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건강 상태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불꽃같은 연기를 보여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공연 다음날 그녀에게 저녁 대접을 했고, 우리 집에까지 와서 함께 와인 잔을 기울였다. 2001년에는 구토를 하고 쓰러지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학사모를 썼고, “배움의 기쁨으로 암을 극복했다.”며 인간승리의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그녀의 투병을 위로하던 나는, 그녀로부터 위로를 받는 처지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렇게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덧없는 것이다.
병들어 자리에 누우면 내 몸도 내 몸이 아닌데, 하물며 무엇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겠는가? 병들기 전 나는 다가 올 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번에 반쯤 죽었다 살아났더니 죽음이 무섭지 않다. 풀 한 포기 벌레 하나도 신비스럽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매일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 살았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표시이다.
한 해를 보내는 엄숙한 순간, 감사의 대상이 너무 많다. 주치의, 수술해준 의사, 암 전문의(Oncologist), 화장실까지 안내하던 친절한 간호사, 몸에 좋다는 것을 보내주시는 미시간의 J씨,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면서 진한 형제애를 나눈 스프링필드의 P목사. 그리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함께 나눈 눈물겨운 이웃과 친지들, 이 ‘전우’들의 고마움을 갚는 길은, 드라마의 종장을 클라이맥스로 장식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 시대와 이 땅에서 겸손하고 당당하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리라. 지금도 투병 중인 친구들 힘내시고,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육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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