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선정
정신건강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태어나서 첫 5년동안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무엇인가?
아이의 신체적 특징과 기질: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령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게 태어난 아이라면, 그 사실을 부모가 먼저 받아들이므로써 아이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아이의 특징과 기질을 잘 알기 위해선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 무슨 운동을 잘 하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관심을 끄는지,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하는지 등등. 아이마다 제각기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걸 이해하고 그 기질에 맞게 아이를 대해주고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원하는 성향이 아니라해서 아이를 내 맘에 들게 바꾸려고 한다면 아이는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막연히 믿게 되는 등,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기질을 존중해 주면서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게 되고, 안정감 있고 자존감 있는 아이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은 아이들에게도 폭력적이기 쉽다. 아주 흔한 예로 어린아이 앞에서 엄마에게 “쟨 왜 저래?”라든가 “저렇게 유별나 가지고(혹은 저렇게 겁이 많아서) 나중에 커서 뭐가 될려고, 쯧쯧” 등의 말 역시 학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의 특성과 기질을 알려고 하기보단 부모의 기대치에 못미치거나,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 경우 윽박지르고, 그런 아이를 낳은 여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더더구나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더 많은 사랑과 보살핌과 지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놀리거나 아이에게 직접 표현하지는 못하니까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등, 여성을 더 구박하고 학대하는 구실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부모와의 관계: 특히 갓난아기는 전적으로 부모한테 의지한다.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달래주고, 이러한 지극히 기본적인 필요 외에 아기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부모와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엄마와의 신체적인 접촉은 아기의 정상적인 성장을 촉진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눈과 눈을 마주치며 웃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기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채워진다. 바로 관계이다. 아기들이 종종 혼자서 웃기도 하고 잘 놀기도 하지만, 때론 혼자 별다른 표정없이 누워있다가 아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면 발을 차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를 포함하여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것은 아기에게 자극이 될 뿐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게 된다. 갓난아기 때부터 보고 듣고 놀이를 즐기며 배움을 갈망하는 아기들에게 자극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중요한데, 그렇다하여 특별한 놀이기구나 장난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가장 훌륭한 놀이상대이며, 엄마의 다양한 얼굴표정, 손 모양, 목소리, 그릇을 이용한 놀이 등으로 충분히 자극을 줄 수 있다.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다면, 느긋하게 아이와의 시간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고 우울한 상태에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한다거나 안아주고 놀아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에 한 여성을 상담하게 되었었는데, 아기가 울지 않는 한 아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힘없이 앉아서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서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기에게 재미있고 자극을 주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다고 하여 엄마노릇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가장 가깝고 신뢰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폭력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아이에게 최대한의 관심과 보살핌을 주려고 노력하되, 여성 자신의 갈등과 상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안전하고 안정감 있는 환경: 어린아이가 안심하고 놀이에 열중하거나 주변을 둘러보며 배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이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아이들이 다른 걱정없이 그 나이에 맞는 발달과제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렇다고 하여 부모간에 말다툼조차 없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충돌로 인한 말다툼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겐 좋은 수업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하여 갈등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배운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사람관계에선 다툴 수도 있다는 것과 잘못을 했다면 스스로 인정하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다툼이 지나쳐 폭력으로 커지는 경우, 즉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부수고, 맞고 때리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 무섭고 불안할 것이다. 특히 폭력이 꽤 자주 발생한다면 싸움이 일어날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불안해 할 수 있다. 나아가 슬프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는 등의 감정을 서로에게 안전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그러한 감정이 쉽게 폭발하여 폭력으로 번졌다면 아이는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기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안정감 있는 가정이란 결국 폭력이 없는 가정을 말한다.
안정감 있는 환경이라 할 때, 혹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사는 가정이라 여기기 쉬운데, 안정감이란 양부모와 함께 산다든지 또는 엄마하고만 산다든지에 좌우되지 않는다. 아이의 입장에선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고, 보살펴주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점, 그리고 생활에서 무언가 예측할 수 있는 일이 꾸준히 일어난다면 아이는 안정을 느낄 것이다. 가령 매일 같은 시간에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간다거나, 매일 저녁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또한 안정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며 적극적인 관심 보이기: 어린아이와 함께 잘 놀아주고 이뻐해 주는 부모가 간혹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서툴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언어와 사고가 발달하는 이 시기엔 호기심도 많아지고,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분명해지기도 한다. 적극적인 관심이란 어린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고, 아이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해 주고,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스스로 가치있게 여기게 되고 스스럼없이 그것들을 표현하게 된다.
아이를 돌보기 전에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 엄마의 정신건강은 아이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며 여러가지의 심리적인 이유로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며, 아이에게 일관된 보살핌을 제공 못할 수도 있다. 가령 그 아이를 통하여 엄마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거나, 불행했던 혹은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망가져 있는 상태라면 아이양육은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의 경우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위하여 자신의 정신건강은 나중으로 미루려 한다. 하지만 엄마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게 된다면 아이의 필요 역시 채워지지 않거나 일관성을 잃기 쉽다. 또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이므로, 스스로를 관리하고 위해주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여주는 것은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아이가 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직도 여자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천천히 해결해 나가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다면 치유를 시작하고, 스스로의 필요에 귀기울이고 그 필요를 최대한 채워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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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정신건강은 내년 초에 발간될 “따로 또 같이: 자녀교육에 관한 책자”에 포함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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