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천재와의 조우이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김 희봉(수필가)
여행은 천재를 바라봄이다. 그의 불우했던 삶을 먼발치에서 관조함이다. 성채를 떠나는 천재의 슬픈 뒷모습을 안타깝게 배웅함이다. ‘로코코의 아들’ 젊은 모차르트는 고향 땅 호헨 잘츠부르크 성에서 버림받은 채 쫓겨나고 말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잘츠부르크는 꿈에서나 봄직한 환상의 고도(古都)였다. 알프스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융단 같은 초원이 펼쳐진 전원도시. 옥색 잘자흐강이 흐르는 시가지엔 바로크식 옛 건물들이 파스텔 화폭처럼 황금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낙원에서 천재 모차르트가 태어났음은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성채에서 그는 왜 그토록 불행했을까?
20세기 초 극작가 호프만슈탈도 잘츠부르크가 천재의 고향일 수밖에 없음을 자랑하였다. 이 곳은 천상과 지상, 도시와 시골, 과거와 현재의 중간지대로서의 지형조건. 그리고 바로크 왕후의 기품과 농민의 순박함을 함께 지닌 문화적 유산이 모차르트 를 낳게 했다고 썼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게 사실이라면 왜 고향은 생전에 그를 홀대했을까?
우리 일행이 시내로 들어가자 산정에 우뚝 선 호헨 잘츠부르크 요새가 철옹성 같은 권위를 뽐내고 있었다. 흰 성곽의 웅대함이 권력의 상징처럼 빛났다. 당시 이 성채의 주인은 대주교였다. 로마교황이 직접 임명한 정치와 종교, 양권을 모두 쥔 절대권자였다.
히에로니무스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궁정 악사로 고용했습니다. 허나 그는 음악에 대한 이해도, 인정머리도 없는 위인이었지요. 모차르트를 하인처럼 부리며 멸시했습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15세에 불과했지만 독창적인 악상과 기법으로 대가의 재목으로 인정받던 터였지요. 5, 6세 때부터의 연주여행으로 프랑스 왕의 총애를 받았고, 13세부터는 2년간 음악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를 다니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익힌 우아한 로코코 풍의 선율미와 이탈리아에서 배운 기술적인 구성력으로 유럽 제일의 음악가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지요 인솔자 M님이 흥미롭게 설명했다.
그러나 옥석을 가리지 못한 대주교는 이탈리아 음악가들을 편애하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폄하했다. 견디다 못한 모차르트는 독일지방을 떠돌았다. 거기서 첫사랑을 만났지만 억지로 헤어져 쫓겨 간 파리에선 어머니마저 여의고 생활은 피폐해졌다. 실의에 차 다시 고향 땅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권력자에게 직업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에 아부할 줄 몰랐던 모차르트는 결국 대주교와 심하게 다투고 성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25살 나던 해였지요. 그 후 그의 비엔나에서의 10년은 잘 알려진 대로 이중고에 시달린 삶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해 그가 중앙무대에 등장함을 견제한 이탈리아 작곡가 살리에리의 중상모략과 극도의 가난에 찌들은 고달픈 생활이었지요 인솔자의 설명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35살 평생, 그에게 행복한 때가 있었을까? IQ가 250으로 추정되던 천재. 14살 때 교황청에서 단 한번들은 알레그리의 2부 9성의 합창곡을 정확히 사보했었다는 두뇌. 장르를 넘나들며 인간의 가장 순수한 영혼을 무려 천여 곡 속에 담은 예술혼. 그럼에도 추운 겨울, 땔감이 없어 아내와 부둥켜안고 밤새 혹한을 견뎌냈다는 그에게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까?
그러나 21세기 가을, 잘츠부르크엔 온통 모차르트만 차고 넘쳤다. 온갖 기념품들과 장식물들, 책과 초콜릿 상자에까지 모차르트의 얼굴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천재의 예술성에 대한 숭배라기보다 상품화의 극치였다. 대주교의 권력도, 무덤도 없이 죽은 천재에 대한 기억도 다 사라진 지금, 잘츠부르크는 오직 자기가 낳은 모차르트를 최고의 명품으로 재포장해 파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의 생가가 있는 네게트라이데 거리를 걷다가 흘낏 천재의 그림자를 본 듯도 하였다. 자신의 초상이 든 초콜릿을 씹으며 어디론가 황망히 떠나는 그의 모습은 슬퍼 보였다. 그날 시린 가슴을 안고 고향을 등지는 천재의 뒷모습을 바라본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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