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라크에 대한 묘안을 가지셨나요?” 미 전국, 특히 워싱턴 정가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질문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도대체 이라크 사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무엇인가. 둘째, 만약 해법을 제시한다면 부시 대통령은 그것을 받아들일까. 셋째, 만약 받아들인다면 현 행정부는 그 해법을 실행할 능력이 있을까.
첫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묘안은 없다”이다. 지난 한 달 워싱턴은 거의 가사상태에 빠져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미국의 권력구조를 바꾸어 놓은 이슈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불만이었다. 승리한 민주당도, 패배한 공화당도 유권자의 의중을 알았으니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방향 잡기가 쉽지 않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사임으로 운은 떼어놓았으나 무조건 ‘즉각 철군’을 요구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양당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승리하고 있다”고 억지를 썼지만 이라크사태의 악화를 체감하기는 백악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가 기다린 것이 이라크연구그룹의 보고서였다.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을 기대한 것은 솔직히 아니었다. 획기적인 새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보고서 발표가 이라크 사태에 대해 당쟁보다는 초당적 논의로 새 전략 짜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다.
보고서가 어제 드디어 발표되었다. 연방의회가 1백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하여 10명의 인사들을 선발해 8개월 넘게 연구하고 토의하여 정리해낸 결과다. 79개항의 건의안으로 되어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개의 가닥이다.
하나는 이라크주둔 미군의 역할을 바꾸어 이라크군 훈련 지원을 위주로 하라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은 2008년 초까지 미군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해서이고 다음은 이라크정부에게 자국의 안정에 대해 책임감을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다. 두 번째 가닥은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인접 중동국가들과의 외교채널 강화다. 이라크 사태 악화의 최대 요인은 종파간 분쟁인데 이들 종파가 국경을 넘어 인접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의 첫 질문은 “만약 보고서의 건의 사항이 모두 시행된다면 이라크 사태는 반전될 수 있을까요?”였다. 연구그룹의 공동위원장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마법 같은 묘책은 없다고 전제는 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성공의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질 겁니다”
건의사항 시행여부는 부시에 달렸다. 둘째 질문, ‘부시가 받아들일까’에 대한 정답은 아직 모른다. 부시는 6일 보고서를 받은 후 일단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담고 있다, 진지하게 검토하여 국익을 위해 시기적절하게 행동하겠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듣기에 따라 상당히 긍정적 반응일 수도 있지만 진심일까, 하는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부시의 고집은 유명하다. 한번 결정한 일은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 게다가 이라크전쟁은 부시의 대통령 임기중 최대 과제다. 대통령 부시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그 승패 여부에 달렸다. 바로 지난주에도 미리 알려진 보고서 내용을 빗대어 언급하며 ‘명예로운 철군’이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했었다.
부시가 용납하기 힘든 것은 철군뿐이 아니다. 자신이 ‘악의 축’ ‘테러리스트의 안식처’라고 몰아쳤던 이란과 시리아와의 외교 강화라니, 껄끄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시가 싫어해도 ‘이라크 정책 노선 고수(Stay the course)’는 이제 버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중간선거에서 민심이 명백히 드러났고 실제로 이라크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에 밀리고 민주당 의회의 압박에 양보하면서 마지못해 코스를 변경, 이번 보고서를 근간으로 새 전략을 시도한다면, ‘과연 부시는 해낼 수 있을까’ - 이 셋째 질문에 대해서도 물론 아직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이라크 전쟁의 주역인 딕 체니 부통령과 칼 로브 비서실 차장이 건재하는 한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 역시 만만치 않다.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과에 대한 장기적 영향이 밝혀진 후인 적어도 수십년은 지나야 이루어진다. 이라크전과 부시에 대한 평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지자들은 임기중엔 인기가 없었지만 후에 높은 평가를 받은 트루먼에 비유하고 비판자들은 베트남 패전의 책임을 면치 못한 존슨에 비유한다.
평가는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당장은 사태수습이 급선무다. 이라크 침공은 테러방지가 목적이었다. 사담 후세인 집권 당시보다는 미국안보에 대한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현 이라크 사태, 중동의 분위기는 이것마저 장담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지금 부시에겐 승리를 위한 해법이라기보다 실패에 대한 사후 관리에 가까운 보고서의 건의사항을 무시할 여유조차 없다는 뜻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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