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로 찾아오는 청동오리처럼, 나도 12월의 철새가 되어 그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주름진 복장(가슴)을 뽈록거리며 먼 고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이곳, 미국하고도 북가주의 따사한 겨울 날씨에 왜 내가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동토(凍土)땅 한국으로 날아가려고 할까? 그것은 내 살아 생전에 최소한 열명의 후계 아동극작가를 배출하기 위해 힘겹게 제정한 ‘주평동극상’의 작년에 이은 두 번째 시상식을 위해서였다.
금년에도 작년의 27편의 응모처럼 22편이란 많은 숫자의 응모작품이 들어왔다는 내 상의 주관처인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많은 수의 응모자가 있다는 사실은 고액(高額)의 상금(賞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을 떠나온 지 30년이 넘은 나를 위해 내 상의 주관처가 되어준 문협의 Name Value 덕분이라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금년에도 작년 제1회 수상작(受賞作)인 ‘이 현’이 쓴 <달팽이>같은 수작(秀作)이 나오겠지 하고 나는 12월에 있을 시상식장에 설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기다림은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가 소풍날을 기다리듯, 새로 산 운동화를 베개 맡에 놓고 운동회 날을 기다리듯 그리고 왕자관을 쓰고 무대에 설 학예회 날을 기다리듯 말이다.
기다림의 사연과 대상이 있다는 사실은 나이와는 관계없이 우리에게 살맛과 행복을 안겨주는 요소가 아닐까? 특히 여울물에 떠내려 가는 잎사귀 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빨리도 떠내려 가는 나 같은 연령층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기다림은 우수작품(優秀作品) 그 자체에도 있겠지만, 항상 만남의 충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누라와 나의 바램에서 어쩌면 그 작품을 쓴 새로운 얼굴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작가란, 특히 아동문학가란 그 작품만큼 그 사람의 됨됨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선 작가인 이 현! 내 가까이에 있는 ‘민아’가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육신(肉身)의 딸이라면 민아와 동갑내기인 현이는 어쩜 한국땅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딸인지도 모른다. 그의 남편이 이름난 한의학 박사로 큰 한방약국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현이는 석 달이 멀다 하고 안부편지를 보내 오면서 값나가는 홍삼과 보약을 지어 보내는 자상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와 전화를 통하여 애비와 딸 같은 대화의 정(情)을 나눈다. 이러한 정다움의 오감이 나에게는 보약만큼의 생기를 돋아주는 요소(要素)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2회 수상작과 수상작가가 누구인가 하고 내 상의 심사위원들의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협 사무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금년에는 작년과는 달리 3인 심사위원이 심사한 작품 중 두, 세 작품을 골라 나에게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더러 그 중에서 당선작을 고른 후에 그 결과를 FAX나 전화로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그 방면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는 단서(但書)의 말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리하여 수일 후 두 편의 작품이 속달로 나에게 부쳐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치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열듯, 아름다운 어린이 연극의 무대장면을 상상해가며 한 장 한 장 작품의 페이지를 넘겨 갔다. 그런데 작품을 읽어 갈수록 무대의 조명이 하나 둘씩 꺼져 가듯 나를 안타깝게 만들어 갔다. 두 작품을 다 읽을 즈음에는 정전(停電)으로 무대의 불과 객석의 불이 완전히 꺼져, 연극의 막을 중도에서 내릴 수 밖에 없듯이 끝내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스물두 개의 작품 가운데 단 한편의 수작(秀作)이 없다니, 이러한 허탈감은 마치 어린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에, 운동회 날에 쭈룩쭈룩 비가 내리고 또 학예회 날에 주인공이 아파서 연극의 막이 오르지 않아 느끼는 그런 허탈감과 같았다. 내가 쓰고 있는 아동극 극본이 성인극과 달리 수많은 제약(制約)을 안고 있어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겠지 하고 자위하고 말았다. 그러자 작년도 수상자인 현이가 더욱 돋보이고 예뻐 보였다.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문협과 심사위원 셋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금년 제2회에는 수상작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에미 캥거루의 가죽 뱃속에 담겨 멀리멀리 달려가듯, 비행기 의자에 푹 몸을 파묻고 한국땅으로 철새처럼 날아가려고 했는데, 날아가지 못하는 철새가 되어 내 글 쓰는 방 책상머리의 회전의자에 주저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내년 제3회 시상식 날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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