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로서 여기까지... 하나님께 감사할 뿐
미국에 한사람밖에 없어요
샌프란시스코 주정부 청사 법무국에 속한 작은 방. 안영혜 박사(53세)는 이곳에서 연구단체나 제약회사의 인체실험안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일을 한다.
약품 시판 전 자문위원(패널)들이 습관성 의약품인 마리화나, 환각제, 진통제를 인체에 투여됐을 때의 효과 등의 실험이나 또 마약 등의 약품 중독 치료에 관한 임상실험을 승인한다.
이 자문위원회는 69년도에 만들어졌어요.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밖에 없어요. 제약회사에서는 캘리포니아가 특별하다고 난리죠.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약을 시판하려면 자문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에게 제약회사나 리서치센터의 로비도 심할 법하다. 이곳에 들어와 4일간 엄격한 교육을 받아요. 얼마 이상 넘어가는 것을 받으면 뇌물이고, 선물도 20불 이하 짜리만 받으라는 교육이죠. 이걸 어기면 물러나야 돼요. 그래서 무조건 사절해요.
그는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UCSF에서 약학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발 전문병원(California Podiatry School of Medicine)의 약학과장으로 10년 이상 근무했다. 이 곳은 발 전문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상관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다. 안 박사는 이때 3명의 경합을 벌였는데 자신이 UCSF출신인 것이 유리했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했지만 9개월간의 수습기간 동안 정말 힘겨웠어요.
영어 스트레스는 지금도 있다
보통 두달 동안 그의 앞으로 도착되는 실험승인안은 20여개. 50페이지도 넘는 실험동의안들을 검토해 10개 정도를 패널회의에 올린다. 이때 그가 살펴보는 주요 사항은 실험동의안이 얼마나 쉽게 쓰여졌는가이다. 또 부작용에 대한 책임, 실험의 이득과 효과, 계획의 튼실성 등을 보고 상정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안영혜 박사는 격달마다 5명의 패널들 앞에서 상정 자료들을 프리젠테이션할 때는 진땀을 뺀다. 패널회의가 있기 전날은 소화도 안되고 예민해진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겐 영어는 해도해도 어려워요. 특히 전치사가 헷갈려요. 그래서 브라운대에 다니는 딸(안성혜)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제 옆방의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검사도 보다 잘 쓰고 잘 말하려면 영문학을 전공할 걸 후회하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기서 태어난 사람도 저런 말을 하는구나 싶어 조금 위안이 됐어요.
간씨 성 널리 알리려고
사실 제 성은 간씨예요. 희귀 성인 간씨를 좀 알리고 싶어서요.
안 박사의 아버지는 1950년대 독일, 일본 유학을 마치고 광화문 국제극장 옆에 ‘간 정형외과’를 세운 간정민 박사. 병원 위에 집이 있었어요. 온 전역에서 언챙이, 기형아들이 몰려들어 우리 집은 항상 시끌벅적했어요. 늘 자식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님 덕분에 6남매 모두 경기고, 경기여고를 졸업했어요.
자식을 위하는 마음도 유전되나, 안 박사는 댕스기빙데이 연휴를 맞아 집으로 온 딸의 편에 이 음식 저 음식 바리바리 싸보내느라 밤늦게까지 음식을 해서 눈까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는데 나도 그러네요.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딸
UC산타크루즈를 졸업한 아들(안성원)은 한국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시어머니가 우리아이들을 3년간 키워주셔서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해요. 또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갔으니까요. 딸 안성혜 양은 현재 역사를 전공하고 있지만 곧 법학으로 전공을 바꿀 예정. 정신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전시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뒤로 주일대사관 앞에서 여는 시위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할머니들의 통역도 맡아주고 웹사이트도 만들어주었어요.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 꼭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안 박사의 남편인 안현수 변호사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안 변호사의 할아버지 안국형씨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수제자로 자금조달책을 맡았고, 안영혜 박사의 할아버지 간성우씨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35세에 옥사했다. 딸 안성혜씨가 이처럼 자신의 가족사에 흐르는 조상들의 활동상을 발표한 글은 담당교수 추천에 의해 저널에 실릴 예정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영혜 박사 집안은 새문안교회, 안현수 변호사 집안은 충현교회를 섬겼다. 부모대의 신앙심은 이들에게 깊이 뿌리내렸다. 안현수 안영혜 부부는 현재 웨스트 포털 루터란 교회와 순복음상항교회(담임 오관진 목사)를 섬기고 있다. 안현수 변호사는 웨스트 포털 루터란 교회의 장로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5세에 임신한 어머니가 힘겹게 나를 낳은 것도, 영어가 안돼 고생될 때 UCSF에서 나를 도와준 친구, 교수가 있었던 것도, 1세로서 이렇게 좋은 직업을 갖게 된 것도 모두 감사합니다. 특히 인종차별받지 않는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그의 상관은 주정부 검찰총장이지만 직접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니며 패널 의장과의 논의를 거쳐 일을 진행하면 된다.
한국에 간 아들이 새문안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보다 감사해요.
<신영주 기자> Yj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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