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가족상담치유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특히 이곳에 사는 우리로서는 문화를 거론하지 않고는 대화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고 있는 이중문화의 영향은 너무도 다양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중 몇가지만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문화의 영향에 대한 이해, 부모-자녀간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차이, 그리고 그러한 차이로 생기는 갈등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부모님들은 자녀가 우리의 문화를 잘 알고 이해하고 그 가치를 간직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이 바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진다.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요시하고, 자기가 맡은 책임에 충실함으로써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자세와 노력 등 동양적 가치는 실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어쩌면 이민생활에서 우리의 문화 못지않게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은 우리 아이들이 매일 접하게 되는 문화는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사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가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이중문화를 부모가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으리라.

아이들이 이곳에서 성장하면서 학교, 친구, 언론 등 사회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는지, 어떤 관심, 고민, 그리고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부모와 그외 한인 커뮤니티로부터 배우게 되는 한국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 양쪽문화를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는지 등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사람들과 특히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해는 자녀를 좀더 폭넓게 이해하고, 효과적인 가르침을 주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청소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한결같이 듣게 되는 대답이 있다. 부모가 자신들의 학교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학교 잘 다니고 성적만 크게 나쁘지 않으면, 우리 부모는 다른 것에 관해선 물어보지 않는다라고 덧붙인다. 자녀의 세계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은 부모-자녀간의 관계를 가깝게 해 줄 뿐아니라, 나중에 아이들이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커다란 보호막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적 갈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존경과 순종이다. 부모님과 윗사람을 공경하고 굳이 찬성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어른의 말씀을 따르기를 바라는게 많은 부모님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눌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생각과 뜻엔 귀기울이지 않고 부모님의 뜻만 강요하는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순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왜냐면 존경 역시 서로가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의견과 감정에 관심을 보이고 존중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일방적이 아닌 상호존중을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차이는 대화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우리 문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들은 그들의 부모와 어떤 관계를 나누었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자랄 때 꼭 필요한 말외엔 말을 아끼는 가정환경이었다면, 현재 자녀와의 관계도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부모가 대화를 주로 훈계 혹은 가르침의 수단으로 여긴다면,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은 즉 잔소리라고 자연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를 원하며, 부모가 자신에 대해선 뭐든지 알고 싶어하고, 잘 하는 것은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틈틈히 시간을 내어 자녀와 어울려 보면 어떨까. 그 시간동안만큼은 야단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비판의 시선을 거두고, 우리의 딸과 아들을 그냥 지켜봐 주고, 서로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 아이들에겐 오랫동안 남을 특별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