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아들을 한국에 보냈다. 우리글도 배우고 우리말도 익히고 우리 것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아들에게 알려 주려는 마음이 귀하다. 나는 그에게 절이나 고궁 등 문화재를 구경시키는 것도 좋지만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 등 요즘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산업 현장들을 보여 주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아직도 질적으로 세계 톱클래스가 못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양으로는 세계 5위 생산국이 되었고,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느끼듯이 안전도나 디자인이나 내구성 측면에서 미국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한국산차가 자동차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태리에 가도 어렵잖게 눈에 띈다. 중국이나, 동유럽, 인도 등엘 가면 한국산차는 고급차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에 오신지 오래되신 분들은 한국에 가시는 길에 서울에서 가까운 부평에 소재한 지엠대우에 들러 생산라인을 한번 둘러보시기를 추천한다. 무인 자동화 용접라인, 악취와 먼지가 별로 없는 친환경 공장 뿐만 아니라 한 라인으로 각각 모양과 사양이 다른 차들이 연속해서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 과거 일본이 자랑하던 소위 FMS(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유연생산방식)을 그곳에서 발견하며 입이 벌어지리라.
요사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과거 미국의 포드에서 시작되었던 대량생산방식에다 고객 한사람 한사람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생산 방식을 결합시킨 소위 대량맞춤(Mass Customization)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맞춤생산으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되 그것을 대량생산으로 흘리면서 원가를 낮춘다. 과거의 산업공학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러한 최신 자동화 생산라인이 한국의 자동차 생산현장 어딜 가나 볼 수가 있다.
최근 11월25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올 해 한국의 선박수출은 220억불을 달성할 전망이라 한다. 1998년 김영삼 정부당시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각종 굴욕스런 조건을 수용해가며 100억불을 빌린 적이 있다. 그날 새벽 당시 임창렬 부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회담성공을 알리는 담화를 발표하던 광경이 생생한데, 금년도 대우, 현대, 삼성 등 우리나라 조선 3사의 수출액이 220억불이라니.
배 만들기(조선)를 영어로 Shipbuilding이라 한다. 실제로 28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경우 배 높이 90미터에 길이는 350미터에 달해 선원들은 자전거나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인다. 또 선미 부분에 각종 주거 편의시설을 포함한 12층 정도의 빌딩을 세워 올리는데, 이쯤 되면 배는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조선소엘 가면 우선 그 선체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높이 100m, 길이 수백m의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들이 선체를 조립하고 있고, 수백 명이 배 한 척에 붙어 용접을 하는 장관과 용접속도와 균질성의 향상을 위해 물속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신기한 광경도 견학할 수 있다. 30피트가 넘는 스크루가 돌아가는 집채만한 엔진실에 들어가 입이 딱 벌어진 아이에게 그 엔진이 한국산이라고 알려주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란다. 통신장비를 포함, 최신 전자장비와 용도에 맞는 특수 선체구조, 해풍을 견디는 특수재질의 대형 빌딩을 배 한척에 합체시키는 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기술력과 고품질의 노동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업을 제조업의 꽃이라고도 한다.
자동차나 조선소 견학이 여의치 않으면, 인천의 중공업 회사나 제철소 혹은 용산 전자상가나 동대문 의류상가(동대문 밸리라고 불린다)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한국이 어찌해서 개인당 소득이 2만불이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중국 연안지역에 5만개가 넘는 회사들을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학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2005년 9월말 현재 총 8만6,600명, 외국유학생의 13.5%)을 보내고 있는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말만 배운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인식이 바뀜으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일부 악덕 기업인들이 눈살 찌푸릴 뉴스들을 만들어 내는 사이 우리나라 곳곳의 산업현장에서는 꿋꿋하게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을 일구고 있는 역군들이 있어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이 아닌가.
서공렬 / 컬럼비아,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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