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비까지 유난히 많이 내려 온 도시가 축축했던 그때 그는 홈리스였다. 밤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잘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맸던 그는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수백만 달러를 버는 투자회사의 회장이며 베스트셀러 작가, 가난한 청소년들을 발 벗고 돕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노숙자에서 월스트릿 정상에 오른 크리스 가드너(52)의 꿈같은 성공담은 지난해 5월 ABC-TV의 20/20 프로에 처음 소개되면서 단숨에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디어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출판사와 영화사의 제의가 잇달았다. 금년 5월 자서전 ‘행복의 추구’가 출판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보증수표로 꼽히는 윌 스미스가 그의 역을 맡았다.
지난주 추수감사절 전날 그를 게스트로 초청했던 오프라 윈프리쇼는 ‘눈물바다’였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참담했던 그의 삶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렸고 그 불행과 절망을 이겨낸 그의 의지에 감동받아 목이 메었다. 오프라는 물론이고 함께 출연한 윌 스미스도, 방청객들도, 또 TV를 지켜보던 수백만 시청자들도 함께 울고 함께 감동했다. 그리고 가드너가 너무 막막할 때 마다 자신에게 다짐했던 말들을 함께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가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가드너의 성공으로 가는 길은 24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 시작되었다. 28살의 그는 의료기구 세일즈맨으로 정신없이 뛰어 다녔지만 아내와 한 살반짜리 아들을 거두는 삶은 언제나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그날 주차장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강렬한 빨간색의 멋진 페라리였다. 주차자리를 찾아 돌고있는 페라리에게 다가갔다. “내 자리에 파킹하세요. 대신 몇가지만 물어봅시다” 그의 질문은 간단했다. “무슨 일을 합니까? 얼마나 버세요?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난 주식중개인입니다. 한달에 8만달러쯤 벌지요” 흑인인 가드너의 엉뚱한 질문에 백인인 운전자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고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하는 일입니다”
가드너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주식중개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누가 보아도 무모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처음부터 아는 건 아니다. 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날부터 인턴자리를 구해 증권회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문은 번번히 그의 면전에서 닫혀버렸다. 아무런 지식도, 인맥도, 배경도, 돈도, 심지어 대학졸업장도 없는 그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1년 가까이 쫓아다니는 동안 그의 형편은 점점 나빠졌다. 삶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불행은 늘 겹쳐서 오기 마련이다. 실직한 후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이 가정폭력으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되었고 파킹티켓 미납기록이 적발되어 10일간 구류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가 수감된 동안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짐을 몽땅 챙겨 자취를 감추었다.
간신히 인턴으로 채용되고 싸구려 하숙집을 얻어 안정(?)했을 때 사라졌던 아내가 아들을 더 못기르겠다며 되돌려 보냈다. 하숙집은 아이 입주 금지였고 월 1천달러 인턴 봉급으로는 아파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로 2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그는 홈리스가 되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헌 유모차에 아들을 태운 채 한 어깨엔 양복 백, 다른 어깨엔 아이물건을 담은 더플백, 한손엔 서류가방, 옆구리엔 기저귀 박스를 끼고…잠 잘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쉘터나 싸구려 모텔에서 공항 대합실, 지하철 화장실, 동료들이 퇴근한 후 사무실 자신의 책상아래가 그들의 잠자리였다.
그렇게 1년을 사는 와중에서도 면허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남보다 열배 스무배 열심히 공부했다. 피로와 굶주림에 정신이 아득해 올 때마다 그는 감옥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힘과 자유는 지식을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다고 자신을 채찍질 했다.
장애는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러나 목표만 버리지 않으면 길은 어딘가에 있었다. 필요한 것은 끈질긴 도전이었다. 늘 어깨를 펴고 걸었다. 집은 없었지만(homeless) 희망이 없는것(hopeless)은 아니었다. 큰 걸음이 아니라도, 작은 한 발자욱이라도 앞으로만 갈 수 있다면 괜찮았다. 그것은 희망으로 가는 길이었으니까. 벽에 부딪치면 기어올라서라도 넘어갔고, 넘을 수 없으면 부수고 나갔다. 그렇게 맞서면서 면허시험에 합격했고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었으며 연봉 30만달러에 스카웃도 되었다. 그리고 1989년 자신의 투자회사 가드너 리치 앤드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는 꿈같은 동화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역경에 부딪쳤을 때 ‘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는 대신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몰두했던 체험담일 뿐이라고 말한다.
거리가 명절분위기로 술렁대는 연말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겐 더욱 힘든 계절이다. 크리스 가드너의 자서전 ‘행복의 추구’는 지난주 값싼 페이퍼백으로 출판되었고 12월15일부터는 영화도 개봉된다. 그의 자신에 찬 음성이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분, 내가 해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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