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리 가요.”
언제나 어디 갈 때면 내가 먼저 차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완전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부부는 살아봐야 서로를 안다고 한 말이 헛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한 이불 속에서 생활한 지도 30여년이 되어간다.
“여보, 우리 내일 가을 풍경 보러가요.”
“이 지역에 그런 곳이 있나? 작년에 가본 Napa 지역도 별것 아니던데.”
“여보, 내가 얼마 전 신문에서 봤는데, 가을 풍경은 북쪽 우거진 숲 속을 가면 그 풍치를 느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봐요.”
“당신, 갑자기 시인이 된 것 같아.”
“사람은 자연 앞에서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당신 멀리 드라이브하는 것 좋아하지 않잖아.”
“그동안 사느라고 그랬죠. 내일 아침 먹고 떠나요. 당신 지도보고 잘 찾아 가잖아요. 북쪽으로 찾아봐요. 애들도 없는데.”
“내일 빅게임 풋볼 봐야 하는데. 내일 아침에 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책상 서랍에서 Bay and Mountain Section 지도를 내어 카펫 위에 쫙 폈다.
골든게이트 다리를 지나면서 잿빛 구름은 산을 넘어와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차는 101번 도로 북쪽으로 달렸다. 아내는 어린애처럼 차 창문 밖으로 전개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멋있다고 소리 지르고, 드라이브에 고무된 기분인 것 같았다.
“저 장식들 불이 켜지면 참 아름답겠다. 여보, 우리 밤에 한번 와요.”
날씨는 더욱 짙어지면서 겨울을 알리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뿌려졌다. 그러나 산 밑으로는 햇빛에 푸른 나무 잎들이 더욱 빛나 보였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여기저기서 노란색으로 변화된 잎들도 보였고, 불어오는 미풍에 곡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잎들도 있었다. 비가 오고 나면 저 잎들은 더욱 선명한 색깔로 변화될 것이다. 새로 갈아입은 모습으로 잠깐 동안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고는 흙으로 떨어져 자기들의 본향으로 돌아가겠지. 차는 국도를 벗어나 산 속으로 가는 175번 길로 들어섰다. 길이 좁아지면서 알지 못하는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푸른 잎들 사이에 있는 노란 색깔은 나의 마음을 한층 더 편안하게 해주었다.
“아! 낙엽이 떨어진다. 저런 모습을 얼마만에 보나.”
아내는 차 유리문을 내리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잡을 듯이 손을 길게 뻗는다. 저렇게 자연 속으로 흡수되어 가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본다. 내가 이런 곳으로 안내를 안 했나? 아내가 관심을 안 나타내었나? 운전을 하고 있는 나도 기뻤다. 나도 차 유리문을 내리고 한 손을 길에 뻗어봤다. 산 속의 찬 공기와 가랑비가 손에 닿는 촉감은 상쾌하고 온몸을 짜릿하게 해 주었다. 이런 느낌이 얼마 만일까. 이곳 사회로 와 강산이 몇 번 바뀌도록 한 번도 찾지 못한 숲 속의 짜릿한 느낌.
“여보, 가을은 내가 느끼고 있으니 당신은 운전이나 잘해요.”
“그래 실컷 봐.”
“그런데 여보, 어찌 노란색은 많은데 붉은 단풍잎은 왜 보이지 않죠?”
“가서 물어봐. 왜 그런지.”
“누구 한데요?”
“창조주한테. 아마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그렇겠지.”
늦가을 비는 하늘을 벗어나 소나무 잎 사이로 깊숙이 빠져들고 차는 점점 높이 올라간다. 비는 오지만 안개도 없고 구름이 높이 떠 있어 그런지 멀리 산 정상들이 바라보인다. 앞에 보이는 산 뒤엔 더 높은 산이 자기의 키를 자랑하고 서 있었다. 어떤 산 능선엔 큰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고, 갈색으로 변화된 잡풀만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능선도 있었다.
“저기 바닷물.”
아내가 먼 곳을 가르친다. 뿌연 안개비 사이로 회색 빛깔의 물이 보인다. 차는 Summit Mt. 정상에 올랐다. 나는 길 옆 넓은 공간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저 산 아래 보이는 호수는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Clear Lake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먼 산 아래를 바라봤다. 아내는 발을 옮겨 놓는다. 걷는 모습이 무엇을 골몰하는 것 같았다. 떠나보낸 옛 연인을 생각하겠지. 나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아내와 등을 마주하고 걸었다. 사춘기 때 동래 금강공원 숲 속을 같이 걸으면서 빨강 낙엽 한 잎을 주어주던 현!.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화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 길을 걷고 있을까. 시간을 화단의 명단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발 앞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집어들 때 아내가 옆으로 와 나는 노란 잎을 주었다. 아내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그녀의 손은 찬 공기 속에서도 따뜻하였다.
차는 언덕을 내려와 Soda Bay Rd.로 들어섰다. 큰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과 높이 솟아 있는 Konocti Mt.은 사진에서 본 유럽의 산 속 호숫가한 마을을 연상케 해주고 있었다. 호숫가 집엔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계절에 따라 뱃놀이하면서 생활하는 저들의 마음은 얼마나 여유로울까. 이 지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몰랐다. 호숫가에 있는 나무들은 붉은 색깔은 없었지만 노르스름한 잎과 노란 잎, 푸른 잎들이 가을의 풍을 한층 더 북돋워주었다. 호수를 끼고 돌다 281번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 좁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더 했다. 이 골짜기만은 단풍나무가 많고 낙엽들이 길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랑비는 떨어지는 낙엽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우리 이 길을 한번 걸어 봐요.”
“그래요, 우산 있죠?”
나는 우산을 펴들고 아내가 있는 쪽으로 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없었지만 가늘게 지나가는 바람에 낙엽은 곡예사처럼 춤을 추다 그들의 친구들 곁으로 가 쌓여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접어들고 낙엽 위를 걸었다. 나는 오랫동안 남을 그림 한 장을 하얀 종이 위에 그린 색깔로 그려나갔다.
“시몬, 나무잎새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이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은 소리가.”
우린 숲 속을 거닐면서 ‘구르몽’의 시를 낭송했다. 아내한테서 이런 순수한 면이 있는 줄 몰랐다. 가랑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오솔길에서 나는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금년엔 가을도 맞이했고, 가을도 느껴봤고 사랑하는 아내와 새로운 추억도 하나 만들어보고 정말 멋있는 가을의 빗길이었소.”
“미국에서 처음 느낀 가을 빗길이네요.”
차는 숲 속을 벗어나 Napa 타운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그라지 앞에 파킹하고 시동을 껐다.
“오늘 그냥 집에 있었으면 기름 값 안 쓰고, 내일을 위해 잠을 푹 자두는 것인데.”
아내는 야멸 찬 말을 내뱉고는 급히 집안으로 걸어간다. 여자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약력: 조선문학 소설 신인상.‘대륙의 바람’(장편) 외 작품다수
<이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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