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추수감사절 예배를 보았다. 추수감사절이라면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인데 한국 교회에서 똑같은 예배를 본다는 것에 다소 의아했지만 장소가 틀린다고 해도 감사의 특별한 뜻은 같을 것이다.
일년 중 사람에 따라 특별히 좋아하는 절기가 있다.
필자도 학생 때는 크리스마스가 제일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교회에 나가진 않았지만 친구들과 같이 밤늦도록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들떠 있던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는 기쁨이, 주는 것보다 더 좋았다.
그러나 붙들 수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어수선한 계절로부터 관심이 후퇴하고 자연스럽게 지나온 세월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뒤돌아보면 지난 세월에 불만도 많지만 반대로 이만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감사라는 단어 “유카리스티아”는 은혜가 많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를 의미한다. 즉 감사하는 자가 은혜를 많이 받고, 은혜를 많이 받는 자가 성공한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기억난다. 탈무드를 보면 “참된 知者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이다. 참된 强者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다. 참된 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번 추수감사절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350년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청교도들이 적고 힘든 첫 수확이었지만 하나님과 땅에 감사했던 그 정신이 아직도 미국민들 사이에서 퇴색되지 않고 더욱 견고한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
미주대륙은 크게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북에 세워진 미국은 감사의 정신으로 인해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되었으나, 남으로 간 사람들은 감사보다 탐심이 커서 오늘날 여러 나라로 찢어져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두 대륙을 감사의 기준에서 보면 현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30년 만에 칠면조 고기와 스터핑이 빠진 색다른 추수감사절 예배 후 거리에 나오니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연말년시 대목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서울의 백화점들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형형색색의 오나먼트로 치장한 소나무를 내걸었다. 추수감사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쇼핑몰에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니언스퀘어 거리와 다를 것이 없다.
추수감사 절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되돌려 머물게 한다.
인생을 아무리 성공적으로 산 사람도 죽기 전에는 3가지 “…껄,…껄,…껄”을 후회한다고 한다.
“그때 좀 더 참고 살 껄” “가족들과 좀 더 즐기고 살 껄” 그리고 “가졌을 때 좀 더 베풀고 살 껄”에 못다한 恨이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나눔에 인색해서 감사 없이 간 허기진 삶을 빗댄 세상 말이다.
추수감사절에 감사하는 마음은 각인각색일 것이다. 연령에 따라, 장소에 따라, 현재 환경에 따라.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의 내가 있다는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 특별히 동토의 땅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 절기를 맞이하여 특별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북한 청소년들이 영양실조 때문에 평균 신장이 150센티 미터 미만이라고 한다. 남쪽과 비교하면 거의 20센티 미터 또는 그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 청소년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인권이 없고,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 외에.
필자는 비록 아파트 광풍과 빈부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해도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남쪽 땅에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미국산 수입 소고기 검사대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한 조각의 뼈 때문에 곧 광우병이 한국인들 몸 속에 들어간 듯 난리 법석을 치며 미국의 굴욕을 조롱하는 듯한 승리감을 보도하는 여기자의 상기된 얼굴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그래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한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또 한 해 마감을 눈앞에 두고 항상 평상심을 잃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지혜의 길을 일깨워 주는 도종환 시인의 詩 “마음의 등대 하나를 세우며”를 독자들과 나누며 해피 할러데이 시즌을 만나고 싶다.
마음의 등대 하나 세우며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역경에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않는 삶/어려울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삶/그렇게 살다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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