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물’의 주인공
의사 시인 마종기
“그의 글에 담긴 언어들은 고요히 내리는 봄비를 닮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닮았다. 이 분의 책을 읽고 나면 ‘우화의 강’에서처럼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갈망에 문득 가을 하늘 같은 기도를 바치고 싶어진다.” 이해인 수녀 시인은 마종기 의사 시인을 그렇게 이야기한다.
마종기 시인과 시카고에서 몇 일 시간을 함께 가졌다. 점심도 같이 먹고,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시 낭송의 시간도 함께 가졌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미국 오하이오 톨리도 에서 의사로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여동생과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시카고에 자주 들리곤 했다. 지금은 은퇴한 후 플로리다에 머물면서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서울에 가면 그가 좋아하는 황동규를 비롯한 문학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창작에 전념하기도 하지만,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문학강의도 맡고 있다. 그는 공군 군의관 시절에도 생리학을 가르쳤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도 방사선학과 교수로 봉직했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을 통해 얻은 것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일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자신도 이것을 무척 즐긴다고 했다. 훗날 학생들은 생리학보다 생땍쥐베리를 더 기억한다고 한다.
플로리다 올랜드 근처에 은퇴처를 정했으나, 너무 더워서 추운 겨울 4개월쯤만 그곳서 지내고, 한국과 미국의 이곳 저곳에서 초청을 받아 문학강연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 지낸다. 시카고에도 그래서 왔다.
의사이면서 시인으로서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마 시인은 이번에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라는 제목의 시집과 ‘Eyes of Dew’(이슬의 눈물)이라는 영문 시집 등 2권을 출간했다. 미국사회와 우리 2세들에게 한국시의 진수를 소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들도 많이 사봐야 할 것 같다. 반스 앤 노블이나 보더스 같은 큰 서점에서 살 수 있으며, AMAZON.COM 인터넷서도 구입 할 수 있다.
마종기 시인은 아들만 셋을 두었다. 이들은 평소 아버지가 시인인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번에 영역 출판된 시집을 계기로 시인 아버지에 대한 긍지가 더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슬의 눈’은 장사를 하다 94년 흑인 흉탄에 맞아 비명에 간 동생 마종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 시집의 중심이다. 그래서 ‘이슬의 눈’이 저자에게는 ‘눈의 이슬’로도 읽힌다며, 천주교 신자인 저자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동생에게 이 시들을 준다고 했다.
동화작가로 한국문단의 거목이었던 마해송씨의 삼남매 중 장남인 마 시인은 2살 터울로 한국에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던 동생 마종훈과 신앙과도 같은 우애를 간직하고 있다.
어릴 때는 고등학교까지 같은 이불을 덮고/ 대학에 가서는 작은 아랫방을 나누어 쓰고/ 장가든 다음에는 외국에까지 나를 따라와/ 여기 같은 동네 바로 뒷길에 살던/ 내 동생 졸지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하느님./ 동생이고 친구고 내 의지처였습니다/ 싸움 한번도, 목소리 한번도 높이지 않은/ 들풀처럼 싱글거리며 착하게 살던 내 단짝,/ 하느님, 당신밖에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납니다. 관을 덮고 나면 내일 하늘이 열리고/ 내일 지나면 이 땅에서 지워질 이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귀염둥이 내 자식이라고 받아주세요.
동생을 위한 조시(弔詩)-외국에서 변을 당한 훈에게 중에서, 제1편 ‘입관식’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와 같이 지극한 우애와 착한 심성은 어디서 왔을까? 부모한테서 받은 것이다. 아들은 ‘내 아버지’ 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내 아버지는/ 아직 젊으시다./ 추운 밤 길목에 서서/ 늦은 누이동생/ 애인처럼 기다리신다./ 내 아버지는/ 머리가 훤한 반백색,/ 아직 아직도 젊으시다./ 오늘밤 눈이 오려나 흐린 날씨면/ 말없이 브람스에 귀기울이셔/ 저기 어머니를 불러 앉히시고/ “그렇지?” 처음 만난 부끄러움같이/ 서로 눈감고/ 브람스에 귀기울이셔/ 첫눈이 온다/ 어두운 초저녁에 첫눈이 온다/ 나는 친구랑 밤길을 걷고/ 남은 아버지/ 혼자서 술잔이나 기울이신대-/ 아버지 젊으실 땐, 아이 참./ 아직 젊으시지./
가장의 사랑, 부부애, 자식의 효도가 흠뻑 베어있는 복된 가정의 스토리다.
그뿐인가? 마해송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언론인 홍승면씨는 동아일보 횡설수설 난 칼럼에 ‘마해송’을 이렇게 기록했다.
“태양과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달 같은 사람이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맑고 시원한 별이었다. 칸나나 다알리아나 글라디올러스 같은 꽃이 아니라 모란이나 장미나 백합에 비기고 싶은 사람이었다. 매화에 비기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문필가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마종기 시인은, 평론가 김주연씨의 평처럼 “우리 현대시가 도달한 가장 높은 경지”에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아름다운 시로 우리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계속 주기를 바란다
육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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