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순
떡 중에서도 허연 백설기보다는 검은 밤콩이 듬성듬성 들어간 콩 시루떡이 더 맛있다. 송편도 밤 대추가 들어간 것, 팥고물, 콩고물, 꿀, 흙 설탕으로 속을 넣은 것도 있지만 그냥 검은 밤콩을 넣은 송편을 난 좋아했다. 뿐 아니라 떡 말고도 콩으로 만든 음식은 모두 좋아했다.
왜 콩이 들어간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는지! 그 시절 가난했기에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없었고 한창 성장기에 필요한 단백질이 부족하여 자연히 몸에서 단백질이 많이 들어간 음식에 입맛에 당겼는지 모른다.
난 그중에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콩 누룽지였다. 옛날 시골에선 여러 식구가 한집안에 살았기 때문에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지었는데 시골이라 잡곡이 많아 밥에 콩이나 조, 수수, 팥 같은 잡곡을 많이 넣어 먹었다. 그래서 밥을 푸고 나면 솥바닥에 누룽지가 두툼하게 눌어붙는다. 잡곡은 쌀보다 무거워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잡곡반 쌀 반으로 누러 붙은 구수한 누룽지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밥을 먹은 뒤 한참 뛰어 놀다 집에 들어오면 긁어 두었던 누룽지를 간식으로 주실 때 먹은 그 콩 누룽지 맛이 아직 것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무시로 그 콩 누룽지 맛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때 먹던 그 누룽지를 해먹을 방법이 없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기 때문에 콩을 많이 넣는다 해도 누룽지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쇠로된 옛날 솥을 하나 구해다가 콩을 많이 넣어 전기 곤로에 올려놓고 콩 누룽지가 많이 눌 도록 한번 시도 해 보아야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 맛이 큰 가마솥에 많은 밥을 지을 때 절로 생긴 오리지날 콩 누룽지에는 비교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밖에도 콩으로 만드는 음식은 하도 많다. 볶은 콩을 엿으로 뭉친 콩강정이 있고, 콩을 간장에 끓여서 바싹 조린 콩자반도 있다. 볶은 콩을 기름, 깨소금, 양념간장으로 버무린 콩장도 맛이 있다.
그보다 중요한 밥반찬의 하나는 콩나물이다. 대개는 콩나물로 국을 끓여 먹지만 별미로 콩나물 밥, 콩나물죽도 쑤어 먹고 그냥 삶아 무쳐서 먹기도 하는 데 그 맛이 마냥 별미인 것이다.
콩떡에는 콩설기 콩가루 인절미 콩 시루떡도 일미지만, 뭐니 뭐니 해도 콩두부야 말로 콩의 귀한 값을 한층 더 높여 주는 음식의 하나이다. 쌩 콩을 물에 불렸다가 맷돌에 갈아 고은 체에 걸러 내어 그 콩물에 간수를 넣어 끓이면 두부가 되는데 초벌 끓을 때 떠먹는 것을 순두부라 하여 그 맛이 정말 별미롭다.
또 체로 걸을 때 체에 남는 찌꺼기를 비지라고 하는 데 효소를 발효시킨 비지 장국에 김치 깍두기 멸치 돼지 살코기를 조금 넣어 끓이면 그 맛이 또한 일미인 것이다.
그리고 잘 삶은 콩을 갈아 콩국을 만들고 그 국물에 국수를 말면 그를 콩국수라고 하는데 고소한 맛도 일미이지만 여름에 더위를 씻어주는 질 좋은 건강식품의 하나로 옛날부터 각광을 받아 오고 있다.
콩으로 만든 음식 중에 정말로 빼놓아서는 안 될 음식은 바로 청국장이다. 역시 잘 삶은 콩을 자루에 넣어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 이불속에 파묻어 박테리아가 번식하여 허연 실이 엉킬 때 간을 맞추고 양념을 해 절구에 찧어 항아리에 다독여 두었다가 떼어 끓이게 되면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천하일미 청국장을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 끓일 때 좀 역겨운 듯 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한 벌 끓이고 난 다음엔 그 냄새가 없어지고 오히려 구수한 특유의 냄새가 입맛을 돋우게 된다. 무 배추김치라던가 두부 같은 것을 곁들이면 훨씬 더 맛깔스럽다.
미국에 사는 어떤 주부가 주일 아침 청국장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한 냄비 끓여서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직장 동료인 외국여자 셋이 놀러 온다는 날이었고 온다는 시간이 다 되었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청국장 냄비를 치우고는 문을 모두 열어 제치고 선풍기는 물론 팬을 있는 대로 틀고는 신문지를 펼쳐 부채질을 하며 청국장 냄새를 내보내느라고 한창 야단인데 손님들이 들어 닥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손님들에게 차 대접을 하면서 눈치를 보니 청국장 냄새에 대한 불편한 표정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점심때가 되어 준비한대로 갈비며 불고기에 김치를 곁들여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아까 들어 올 때 아주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그 음식은 왜 주지 않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청국장 얘기 같아 뒤뜰 구석에 내다 감추어 놓았던 청국장 냄비를 갔다 보여 주었더니 바로 그 냄새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밥에 비벼 맛있게 먹더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치 냄새, 마늘냄새, 청국장 냄새 때문에 괜히 쪽팔리고, 괜한 콤풀엑스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지구촌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들, 따지고 보면 곡식, 채소, 생선이든 그 재료란 그들 것이나 우리 것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요리 방법이 조금 다를 뿐 그렇게 자기 폄훼를 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5천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음식이 그네들 것 보다 더 우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괜히 쪽팔리지 말고 좀 더 떳떳 하자.
이모저모로 다미다양[多味多樣]한 콩 음식 얘기를 하다 보니 불현듯, 콩 누룽지, 콩 국수, 청국장 생각이나 입에 침이 고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청국장 하나 사다 무김치 썰어 넣고 잘 끓여 먹어 보아야겠다.
건강에 좋다는 콩 음식, 지금 우린 콩 음식 웰빙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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