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편집국장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로마 전성시대를 연 율리우스 시저가 무려 2,000여년 전에 한 이 말은 21세기 초입에 든 요즘도 유효하다. 인류의 개조가 이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자의 경험에서도 수없이 확인하는 바다. 특히 비판기사를 썼을 때다. 대개 비판을 당한 쪽은 기사의 본질(사실여부와 공적 기능)을 제쳐둔 채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의도 넘겨짚기), 아무개도 그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물귀신 작전) 등 볼멘소리들을 하곤 한다. 그중 가장 흔한 소리가 ‘김홍익 한인회장 봐주기’다. 물론, 깨끗이 인정하고 해명하고 사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도 귀해서인지 이들을 보면 기사를 쓴 사람으로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에 앞서 미안해진다. 인지상정이다.
■한인사회 대표기관은 한인회다. 수십개 단체들이 난립한 한인사회 중심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인회다. 김홍익 봐주기론을 입에 올리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이것이다. 선이 어떻고 후가 어떻고 구구한 예를 들고말 것도 없다. 이정순 전 한인회장이 10월26일(목), 이석찬 전 한인회부회장이 10월28일 기자에게 한 말로 대신하겠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사람 다 기자에게 “(각종 비판기사를 통해) 한인회 위상을 높여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을 예로 든 까닭은 다름 아니다. 이석찬 전 부회장은 오는 12월9일로 예정된 제25대 SF한인회장 선거출마가 점쳐지는 예비후보다. 이정순 전 회장은 그의 핵심참모 내지 조력자다. 이석찬 전 부회장의 유력 예비맞수는 김홍익 현 회장일 가능성이 높다. 둘 다 아직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올해 선거는 둘이 맞붙었던 04년 선거의 재판(리매치)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양쪽 진영에서는 이를 굳은자로 믿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상대를 겨냥한 험악한 소리들이 나돌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정순 전 회장과 이석찬 전 부회장이 기자의 행위(일련의 비판적 기사들)를 한인회 위상 높이기로 후한 평가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선거판의 (예정된) 맞수진영이라면 있는말 없는말 지어내서라도 제논에 물대기식 억지를 부리곤한다는 데 두 사람이 그런 태도를 보여준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걸핏하면 음모적 마각을 드러내는 사람들더러 새겨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제(14일) 밤 SF한인회 이사회 석상과 이후에 희한한 사태가 벌어진 모양이다. 김용진 한인회 부이사장(이사장대행) 겸 EB상의 부회장과 강승구 한인회 이사 겸 EB상의 사무총장이 돌연 사표를 내면서 했다는 말(발언자는 김 부이사장) 가운데 두가지만 짚는다. 본보 및 기자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해의 편의상 발언부분을 <>에 담고 기자가 답하는 부분을 이어붙인다.
<한국일보가 콜렉션 에이전시(미수금 처리대행)냐, 나도 EB상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데 회장단이 이 문제에 대해 나나 이사진과 상의도 없이 신문사에 (미납사실을) 흘린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
본보 보도로 단체간 후원약속 이행에 탄력이 붙는다면, 만일 그런 뜻으로 한 말이라면, 본보는 콜렉션 에이전시의 역할을 기꺼이 할 것이다. EB상의에 후원약속을 해놓고 부당하게 지키지 않은 단체가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기 바란다. 다만, 본보는 개인의 후원금약속 불이행에 대해서는 그 개인의 양식에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지난해 미주체전 후원금 부도파문 당시에도 본보는 개인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올해 한국의날 민속축제 후원약속 지연 및 부도와 관련해서도 이같은 입장을 지켰으나, 최근 상황이 바뀌어 부득이 전체명단을 공개했다.
본보가 EB상의의 미납사실을 알게 된 경위도 김 부이사장의 추측성 단언과 다르다. 미수후원금 문제는, 누가 얼마냐 문제만 빼놓고, 10월10일 이사회에서 거론됐다. 당시 본보는 이사회를 취재하지 않았으나 이튿날 전화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 후속취재를 통해 미수후원금 실체를 파악하(려)는 건 기자의 당연한 직무다. 고상하게 말해 한인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서도 그렇다. 정당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는 건 한인회의 의무다. 더욱이 중앙일보가 10월13일 “수재의연금 늑장처리 물의” 기사로 한인회를 비판하고 한인회가 정면반발하는 등 그 뒤로도 한참동안 돈 문제가 꽤 큰 이슈였다. 김 부이사장과 강 이사는 10월10일 이사회에 참석했다. 회장단이 흘리고말고 하기 이전에, 기자가 알아보기 이전에, EB상의의 간부로서 응당 EB상의의 약속이행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했다.
더더욱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 전동국 EB상의 회장이 뇌관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진 이른바 ‘오가네 떼강도 괴담’ 사건 와중이다. 그 전말은 이미 보도된 대로다. 기자는 전 회장이 한상대회 참가를 위해 10월26일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전날 밤 전 회장에게 전화해 EB상의 회장으로서 처신을 잘못한 점을 지적하고 한국행 이전 사과로 수습하라고 조언했다. 만일 피해자가 오가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크게 다뤘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아울러 선거관련 갖가지 소문을 접한 터라 이를 전해주며 공인으로서 깨끗하게 주변정리를 하고 출마를 하든지 하라고 일러줬다. 그냥 어영부영 한국으로 가버리면 000(모 단체 회장) 꼴 난다는 말까지 했다. 주변정리는 곧 후원금 문제였다.
<한국일보 정태수 기자가 이석찬 전일현 이정순 씨를 만나서 김홍익 회장이 잘했으니까 2년 더 하도록 (이석찬 씨에게)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김 회장 표가 떨어진다.>
이사회 석상에서 내뱉는 그런 중대발언이라면 응당 당사자들에게 확인을 했어야 한다. 당장이라도 이석찬 전 부회장 등에게 확인해보라. 그 발언을 전해듣고 기자는 김용진 부이사장에게 확인했다. 그는 “이동영(SF한인상의 사무총장)이한테 들은 얘기이고 이동영이가 확인한 것이라고 해서 (발언)했다”고 말했다. 이동영 사무총장은 “확인한 것은 아니고” 등 말꼬리를 흐리다가 “(김)상언(SF한인상의 고문이사)이형한테 들었다”고 했다. 기자는 더이상 알아보지도 않았다. 대신 이 총장에게 “당신들이 이석찬 씨나 김홍익 씨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알아보라.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칭찬할 것이다.”
■이유가 있다. 기자는 기자가 느낀 대로 김홍익 회장에게는 이석찬 전 부회장의 장점을 얘기하고, 이 전 부회장에게는 김 회장의 장점을 얘기하며, 막가는 싸움판이 안되도록 노력했다. 둘 다 호의적이었다. 둘의 15일 밤 상큼한 깜짝만남은 일부나마 기자의 노력에서 결과했다고 자부한다. 만일 이런 일을 기자가 아니라 다른 누가 했다면, 큼지막한 미담기사를 기꺼이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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