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B 아저씨, 이 글이 북한의 대남방송이나 평양에 한 군중대회에서 외쳐대는 구호쯤으로 생각하시겠지요. 도끼, 죽창, 곡괭이 등등 너무나 끔직한 단어가 난무해서 그래도 얌전한 몇 줄만 썼지만 그 글은 이북에서가 아닙니다.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김남주 라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시인(?)인지 주사파 행동대원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그리고 <민족은 하나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2년 전 남북작가 협의회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모여서 소위 축제를 가졌는데 맨 마지막의 순서, 남한의 작품을 북한의 문인이 낭송한다며 읽혀지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남한을 대표한 한 분이 고은 시인이었다고 합니다. <비굴한 아첨이냐> <기회주의자들의 처신이냐>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이것은 남북화해에 절대 득이 아니다. 더욱 더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 그렇게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소위 노벨상 후보에 거론되는 분으로서 나는 매우 안타까웠고 그 분의 이름에 걸 맞는 ‘용기’가 아쉬운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나하고 격(格)이 안 맞아 금년 금강산에서
열리는 6.15 남북 작가회의인지 뭔지는 안 가겠다” 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면서 좀 더 분명한 불참 이유가 못되고, 또 아무리 늦은 감은 있다 하지만 그분의 결정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B아저씨, 사실 내가 북한의 글을 많이 접하지 못하니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그들의 글이란 이미 문학이 아니고 그들이 만든 주체사상의 틀 속에서 선전, 세뇌목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전이라면 무조건 양반, 관리들이 백성을 쥐어짜는 탐관오리이고, 이에 최하위의 천민, 백성의 억울함, 그리고 저항 또는 봉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부수상까지
지낸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이 그들의 바이블이었을 것이고, 아니면 일제시대는 잔혹한 일본, 그리고 그들의 앞잡이 친일매국노, 이에 맞서는 인민들의 항쟁 그래서 김일성 같은 시대의 태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빨치산이 되거나 뭐 그런 것으로 일관된 글이며, 그래서 그들이 가장 잘 썼다는 <꽃 파는 처녀>의 영화 여자 주인공이 세계역사에 처음으로 그들의 인민화폐 기본권 1원짜리에 인쇄되기도 하고, 또 거기다가 곁다리로 미신, 무당, 점쟁이에다 기독교인을 두리뭉실 묶어서 ‘종교는 비과학적이고 마약이다’ 라고 하는 에피소드를 집어넣기도 하고 말입니다.
B아저씨, 내가 갑자기 왜 북한의 문학에 대해 열을 내는지 화가 났는지 설명을 해야겠군요. 언제나 그랬듯이 지난 서울 방문 시 마지막 날 서울을 떠나던 인천 국제공항에서 주머니에 남아있는 원화로 비행기에서 읽을 요량으로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어디서 얼핏 <추리소설, 훈민정음>이란 광고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이 그럴듯해서 샀지요. 비행기 안에서 작가를 보니 이름은 박춘명, 1933년 평북 출생, 인민군으로 참전 1961년 김일성 아버지 이름을 딴 김형직 사범대학 졸업으로 <임오풍운>을 썼다고 되어 있어서 이제 이북도 글의 영역을 늘려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추리소설까지 쓰는구나 하고 흥미를 돋구었습니다. 그런데 30분을 읽어도 한 시간을 읽어도 글 속에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틀도 없고 추리라고 할 만한 박진감, 스릴 같은 것 하나도 나타나지 않아서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읽어가다가 다 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용이란 것이 그저 한글은 묘향산 골에서 천민들이 써 왔던 것을 성삼문이 체계화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누가 나보고 서평을 쓰라면 <말똥이 굴러도 깔깔거리며 큰 에피소드가 되는 한 한적한 시골 중학교에서 일년에 한 번 내는 학교학생 문예지에 중학교 3학년생이 신통하게 철자법, 띄어쓰기 철저히 맞추어서 쓴 글 정도였다>라고 썼을 것입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나의 귀중한 몇 시간을 어처구니없는 글도 아닌 글을 읽느라고 보낸 것이 몹시나 억울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저씨가 떠오르고 아저씨 말씀 한 마디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비록 동네에 작은 책방이지만 내가 읽고 내가 공부해서 이웃 분들에게 교양을 높이고 마음을 살찌게 하고 영혼을 위한 좋은 책을 추천하고 읽게 함으로 커다란 행복과 자부심을 느껴왔지만 어찌됐든지 책들을 안 읽고 나 또한 참고서, 입시준비 문답집 같은 것이나 팔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구나>
B아저씨, 아저씨의 이 말씀 한 마디를 붙잡고 사는 <편집, 발행, 인쇄>하는 분들이 많이 생기고 그리고 아저씨가 운영하셨던 것 같은 책방이 동네 곳곳에 성업이 되고, 또 나의 아까운 생명의 시간을 도둑질해 가는 엉터리 출판사를 어찌하면 문 닫게 할 수 있을 까요. 하도 답답해서 이미 고인이 되신 B아저씨께 넋두리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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