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체제 유지에 절대적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 후원자인 중국의 의사에 반해 핵실험을 하다니.”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지 2주, 계속해 온갖 관측이 난무한다. 이 와중에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가 한 말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란 이야기다.
이 당국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는 게 행정부 내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폭정체제의 안정과 관련해서.”
200만,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굶어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체제를 개방하고 외부 원조를 받아들이면 그 같은 세기적 재앙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악성 나르시시즘’의 독재자라고 했나. 타인의 고통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는다. 아니, 느낄 수 없다. 남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위인이니까. 때문에 수백만이 굶어죽어 가는 상황에도 수백달러짜리 코냑을 마구 마셔대는 것이 양심의 부담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경애하는 지도자가 핵실험을 강행했다. 수많은 인민의 목숨을 대가로 강성대국의 꿈을 결국 이룬 것인가. 핵실험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많은 시각이다.
아니다. 김정일이 몹시 초조해 있다는 증거다. 국제사회의 반응을 돌아볼 여유도 없을 만큼 특단의 사정이 발생했고 그 처방이 바로 핵실험이다. 전혀 다른 시각의 분석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정일 체제 유지에 불가결적인 요소는 군부다. 이 북한 인민무력부 안에 뭔가 불온한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취한 필사적인 조치가 바로 핵실험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진단이 어떻게 가능할까. 북한이라는 체제의 근본 성격, 그리고 오늘날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답이 많은 부문을 설명해 준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범죄국가다. 마약, 가짜 담배, 위조 달러화 밀매, 그리고 불법 무기판매 등이 주 수입원이다. 이 돈의 관리자는 다름 아닌 김정일이다. 이렇게 번 돈을 김정일은 범죄조직의 하수인격인 군장성, 당 간부의 충성관리에 사용해 왔다. 말하자면 마피아 식이다.
이런 북한은 오늘날 오직 돈이 말해 주는 사회다. 주체사상은 액세서리다. 대기근 참사 후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을 돈으로 본다. 돈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충성심도 불러온다. 돈이 마를 때는 충성심도 사라진다. 김정일과 군부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시 수백만이 굶어죽었다. 평화시에 이처럼 많은 주민을 아사로 내몬 체제는 유사이래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김정일 체제는 별 동요가 없었다. 어떻게. 물질적 풍요가 보장된 군부가 체제를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이 군부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역시 돈이다. ‘주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는 향응에 물질적 풍요만이 관심사다. 이 특권이 김정일 친위대 등 일부군부대에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민가를 약탈한다. 오래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군인에 대한 식량배급도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 돈만 쥐어주면 군인들이 국경 탈출을 돕는 정도는 예사다.
그 돈 사정이 더 옹색해졌다는 것이다. 핵개발에 막대한 재정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 핵이라는 게 그렇다. 근본 목적은 수령절대주의 체제 옹위에 있다. 대다수 군부대의 안위와는 별 관계가 없다. 때문에 군부 내 불만은 더욱 고조돼 왔다는 분석이다.
“북한 같은 체제에서 민중봉기는 가능성이 없다.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은 체제의 바디가드다. 그 바디가드, 즉 군의 일부가 몹시 동요하고 있다.” 한 북한 관측통의 말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김정일의 돈줄을 끊다시피 해서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우리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김정일이 북경 방문에서 토로한 고충이다. 시시각각 상황은 옥죄어 온다. 바디가드들의 움직임도 점차 수상쩍다.
불만에 찬 군부에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동시에 국면전환도 꾀해야 한다. 핵실험 강행에 나선 것이다. ‘북의 핵실험은 내부를 향한 것이다’-. 탈북자들의 하나 같은 견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 금융, 그리고 외교적 제재가 어쩌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전복)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제재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휘청거린다. 거기다가 북한을 움직이는 건 김일성 망령이 아닌 돈이라니 하는 말이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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